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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나방 Aug 14. 2018

자살, 그리고 남겨진 이들

남겨진 이가 떠난 이를 그리며

 나의 어머니는 눈앞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된 일이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아직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식 된 이가 어떻게 눈앞에서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잊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청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장애등급을 따로 받지는 않았지만, 통화나 낮은 목소리의 대화 등 일상생활에선 굉장히 불편할 만큼이요. 또, 미신에도 꽤 심취해 있어 나머지 세 식구들에게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나름대로 사후세계에 관한 믿음도 강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없는 형편이지만 온 식구가 독서에 취미가 있어 좁아터진 단칸방의 책장엔 온갖 책이 가득했고, 그 일부는 영혼과 사후세계에 관련된 것들의 자리였죠. 가끔 어머니가 어린 저에게 이야기해주시던 사후세계는 평화롭고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여느 가정처럼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철없는 두 형제와 당신들의 연명을 위해 부모님은 참으로 다양한 생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식구들 몰래 끌어다 쓴 대부업체의 돈이 모든 비극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평생 가진 것 없이 살아온 어머니는 슬프게도 경제관념이 충분치 않으셨고, 당장 얼마 되지 않는 돈에 붙은 이자가 어떤 방식으로 불어날지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동안 자식 몰래 눈물과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을 어머니는 어디서 구했는지 독한 농약을 마시고는 결국  20여 년을 함께한 배필과 자식들을 남겨두고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응급실에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온몸에 섬뜩한 초록빛을 띄고 살려달라고, 사실은 죽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닳을까 깨질까 사랑하던 막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애걸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자살한 이의 유족들을 영어권에서는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라고 하더군요. 일부 선진국에선 남겨진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심리치료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소 자극적인 이 단어와는 다르게 장례식 이후 덩그러니 남겨진 세 남자들은 생각보다 큰 변화 없이 잔잔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이전보다 찌개를 훨씬 능숙하게 끓이게 되었다거나, 항상 헷갈리시던 분리수거도 척척 해내게 되었다거나, 우리 형제가 이전보다도 밝은 사람이 되려 애썼다거나 하는 점들을 빼면요. 매사에 성실하고 고전문학을 즐기던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서인지, 우리 형제는 공부도 곧잘 하여 둘 다 서울의 나름 명문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낯선 서울에서도 타고난 사교성이 워낙 좋은 형제이다 보니 각자 대학생활도 시끌벅적하게 보냈고, 취업난이 무색할 만큼 어려움 없이 좋은 직장을 구했으며, 형은 어머니만큼 고운 성품을 지닌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지내는 집에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냉장고 속을 보고 불현듯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는 날이나, 친구의 어머니라도 뵙고 인사드린 날, 또 동네 마트의 반찬가게 아주머니를 보는 날은 수면제를 먹어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습니다. 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을 세듯 어머니와 보냈던 날들을 하루하루 찬찬히 꼽고 기억하고, 또 후회하길 반복하며 아침이 오기만을 바랐죠. 그렇게 뜨는 해와 함께 지쳐 선잠이 들 때는 어김없이 기억 속의 10년 전 어머니와 청년이 되어버린 아들이 데이트하는 즐거운 꿈을 꾸곤 했습니다.




 오늘밤도 저는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들을 추억합니다. 너무나 간단히 먼 곳으로 가버린 어머니가 미워 가족 모두가 어떤 신도, 종교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어머니가 이야기하던 영혼들이 모이는 곳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곳에서 모질었던 삶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어쩌면 먼 훗날, 다시 한번 어머니와 당신보다 더 늙그수레해진 아들이 손을 꼭 잡고 데이트하는 것이 마냥 꿈속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어머니. 오늘도 밤이 참 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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