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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ul 28. 2023

#88.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왜 하필 이 더운 날에, 어쩌자고 저러고 있는 걸까.

우리 회사 흡연 구역은 건물 바깥에 있다. 일할 때면 한두 시간에 한 번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 오늘은 31도까지 기온이 올랐고 습기까지 더해 너무너무너무 덥고 습했다.


여의도에 있는 이 회사에서 일한 지 3년이 넘었다. 여의도라는 지역 때문인지 회사가 입주한 건물의 특수성 때문인지 종종 회사 앞에서 시위가 열린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몇 차례 봐온 바 오늘은 좀 작은 규모의 시위였다. 참가자는 열명 남짓이었다. 아침부터 빨간 띠를 두른 사람들이 아스팔트 바닥에 자리를 잡았고, 싸구려 엠프에서는 민중가요가 지지직 거리며 흘러나왔다. 리더로 보이는 아저씨가 날이 많이 더우니 물을 많이 마시라고 안내하는 걸 들었다.


아, 징그럽게 덥네 진짜. 건물 출입구에 있는 회전문을 돌자마자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오후가 되니 더위와 습기가 배로 심해진 것 같다. 신기하지. 회전문 하나를 사이로 건물 안은 이렇게 시원한데, 밖은 이렇게 뜨겁고 습하다니. 의미 없는 감상을 하며 흡연 구역으로 걸어가다 그 모습을 또 보았다. 오전부터 시위를 하던 사람들 말이다. 선글라스를 끼고 우산인지 양산인지 모를 것을 펼치거나 모자를 썼지만 뜨거움을 하나도 못 피한 것 같은 모습들. 외치는 구호는 단단해 보였지만 그들의 모습은 흐물거렸다.


울컥했다. 저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 더위에 아스팔트 위에서 저러고 있나. 저 사람들은 알까.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건물 안의 모습을. 회전문만 넘어도 바깥의 더위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시원하다 못해 추워서 사무실에서는 긴팔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음질이 좋지 못한 민중가요도, 터져라 외치는 구호도 회전문만 넘으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위와 습기를 흡수하며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봐야 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아예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왜 하필 이 더운 날에, 어쩌자고 저러고 있는 걸까.


어쩔 수 있는 것이 없어서겠지. 어쩌면 이 더위나 습기보다 더 뜨겁고 축축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그래서 이깟 날씨쯤은 문제도 아니어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 돌아가는 길에 무슨 시위인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더워 발걸음을 서두른 나머지 급하게 회전문을 넘었다. 나는 금세 더위와 함께 그들을 잊었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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