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이 가고 새해가 온다는 감상에 집중한 나머지,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바로 24년이 나의 마지막 삼십 대이고, 새해와 함께 사십 대가 된다는 것. 그렇다. 나는 올해 마흔이 되었다. 25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좋지만, 지난 나의 삼십 대를 회고해보고 싶어졌다. 그 일환으로 삼십 대에 잘한 일을 떠올렸다.
[내가 만든 나만의 공간]
삼십 대 초, 광고 회사를 다닐 때 부모님 댁에서 통근을 했다.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출근은 오전에 하지만 퇴근은 새벽에 하는 빡센 업무 강도에 지쳐가던 즈음, 출퇴근 시간만 줄여도 살만하겠다는 생각에 독립을 강행했다. 계약의 주체가 되고,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입금하는 일이 두려웠지만 이런 것들을 해내는 내가 대견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야 취향이 생긴 것 같다. 내 공간은 내가 돌봐야 했으니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게 되더라. 철제보다는 나무를 좋아하고, 거울은 없어도 되지만 책상은 꼭 필요하다는 것도, 공간이 좁아도 침대만큼은 넓어야 한다는 것도 독립을 하고서야 알게 된 나의 취향이었다.
[퇴사 후 휴식, 백수 생활]
이직할 곳 없이 퇴사를 한 건 처음이었다. 당시 너무 지쳐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 대안 없이 선택한 퇴사였다. 쉬면서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다시 사회로, 조직으로 복귀하지 못할까봐 종종 두려웠다. 그때마다 나를 달래는 수밖에. 이 휴식도 언젠가 끝이 날 터이니, 끝난 뒤 후회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자고 말이다. 이건 사실이었다. 휴식은 끝났고 다식 사회로 복귀했다. 백수 생활을 하며 여러 일을 했고, 대부분 삼십 대에 잘한 일들에 포함된다.
[의대도 아닌데 십여 년만에 받은 졸업장..]
처음 취업을 했을 때,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였다. 한 학기를 더 들어야 했지만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 학교를 잊고 지냈다. 당시 나의 팀장님은 나와는 다른 생각이었다. 겨우 한 학기 남아 있는 걸 왜 자꾸 미루냐며, 그러다 계속 미루게 된다고 학교에 가라고 했다. 그의 설득과 배려로 일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덕분에 수료는 했지만 졸업 논문이 남아 있었다. 이건 또 쓸 자신이 없어서 계속 미루다 앞서 말한 백수 시절에 썼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논문을 쓰는 게 낯설었지만 끝내했다. 이로써 십여 년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장보다 더 쓸모 있는 운전면허]
운전면허는 스무 살부터 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생각에 늘 포기했다. 학원 비용이 나에겐 너무 비쌌고, 그걸 지불하고 따더라도 차가 없으니 장롱 면허가 될 게 뻔하니까. 따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백수 생활을 할 때, 중고차라도 사겠다는 마음으로 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면허를 따니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이 중고차를 그냥 주었다. 덕분에 바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면허를 딴 건 삼십 대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하다. 차를 끌고 남편과 출근을 하고, 여행지에서 렌트를 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나돌아 다닐 수 있으니까. 면허 하나가 주는 자유와 편리함이 너무나 많다.
[쉽지 않았지만 쉬워진 가족 여행]
버킷 리스트에 가족 여행을 써두었던 다이어리를 다시 본 적이 있다. 다이어리에 쓸 때는 막연하게 언젠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시간이 안 되어서 돈이 없어서 미루다 다이어리에 박제해 두고 잊고 지냈던 가족 여행, 지금 해야겠다 싶었다. 부모님과 상의하고, 할머니를 설득해 제주로 여행을 갔다. 어른들과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첫 여행을 계기로 가족들과의 여행을 가는 것이 좀 쉬워졌다.
[지금도 재직 중]
지금 이 회사에 5년 넘게 다니고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다닌 회사이다. 퇴사를 고민했던 시기가 여러 번 있었다. 내가 내보낸 광고 메시지가 트위터에서 논란이 되었을 때, 실장이 되어 이 무게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때. 퇴사를 내뱉었고, 상대방의 설득 끝에 잔류를 했다. 지나고 보니 잔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내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으므로. 지금도 퇴사를 꿈꾸고는 있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가 아닌 내 인생에 새로운 도전이 생겼을 때 퇴사를 하고 싶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이십 대 말에는 결혼을 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나니 결혼에 대한 생각이 옅어지더라. 혼자 사는 삶이 꽤나 마음에 들었으므로. 그래서인지 결혼하자는 제안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고, 결혼 준비 과정이 평탄하지 않았다. 결혼이 나를 위해서 라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한 것쯤으로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 전후 많이 싸우기야 했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결혼하고 나면 안정감을 찾는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얼핏 알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해 주고, 케어해 주는 존재가 있어 다행이고 든든하다.
[나 홀로 여행, 이탈리아]
지금 회사에서 3년이 되었을 때 한 달 휴가를 받았다. 회사 생활을 하며 처음이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보낼까, 여러 나라를 여행할까 고민하다 이탈리아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러 브랜드나 음식이 다 이탈리아의 것이어서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 하나로 정했다. 아시아를 벗어나 혼자서, 약 3주 정도 되는 긴 시간을 여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콘텐츠로만 보던 이탈리아의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멍 때리며 와인을 마시고, 시칠리아에서 나만의 단골집을 만들고, 매일 같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황홀하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취미 찾기]
내겐 별다른 취미랄 게 없다. 취미를 갖고 싶어 여러 시도를 한 것도 삼십 대의 일이다. 원데이 클래스로 여러 가지를 해봤다. 프랑스 자수, 팔찌 만들기, 가죽공예나 쿠키 만들기까지. 클라이밍도 해보고는 흥미가 생겨 정규 클래스도 들었다. 대부분은 지속적으로 하는 취미가 되지는 못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에 주저하기 일쑤였는데, 다른 것들을 좀 더 쉽게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
다이어리도 일기도 심지어 브런치까지 나의 글쓰기 행위는 삼십 대에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기록에 대한 니즈는 있었지만 글로 하는 기록은 시간이 꽤나 필요한 일이라 귀찮았다. 주변에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를 쓰게 되었고, 다이어리 지면으로는 부족한 이야기를 일기장에 쏟아붓는다. 브런치는 회사를 쉬는 동안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플랫폼이다. 몇 해 전부터는 모닝 페이지에도 관심이 생겨 시작했다. 이탈리아 여행에도 모닝 페이지 노트를 챙겨갔다. 글을 안 쓸 땐 글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쓰기 시작하니까 글 쓸 일이 계속 생기니 신기하다.
얼마 전 친구와 십 대 , 이십 대, 삼십 대 중 언제가 가장 좋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둘 다 삼십 대라는 결론을 내었다. 가장 주체적으로 살 수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안정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삼십대로 지낼 땐 잘 몰랐는데, 이렇게 정리를 해보니 좋은 시절을 잘 보낸 것 같다.
이제는 사십 대다. 나이를 먹는 것도 괜찮고, 늙어가는 것에도 아직은 크게 감흥이 없지만 ‘사십 대‘ 혹은 ’ 마흔‘이라는 워딩은 괜히 부담스럽다. 곧 익숙해지고 좋아지겠지. 사십 대를 즐겁게 지내야겠다. 잘 가, 삼십 대. 반가워, 사십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