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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있을 때 잘하자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떠오른 말

by 백수쟁이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의 일이다. 할머니가 떠난 게 슬프기도 했지만, 후회가 더 컸다. 할머니가 좋은 추억을 안고 떠나길 바라면서 할머니와의 여행을 떠올렸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할머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는 건 나의 오랜 버킷 리스트였고, 몇 년 전 함께 제주 여행을 했다.


여행 내내 할머니가 미웠다. 숙소에서 엄마가 차려내는 음식은 잘만 드시면서 식당만 가면 먹기 싫다고 하셨다. 커피숍을 가도 메뉴를 고르기는커녕 가격만 보고는 비싸다고 역정을 냈다. 바다를 보며 감상에 빠지기보다는 해변에 널린 해초를 왜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가 없냐고 너무 아깝다고 했다.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아낄 궁리만 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화가 났다. 여행에서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어 다시는 함께 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몰래 다짐했다.


올해 설 연휴에 할머니를 찾아뵌 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살이 너무 많이 빠지고, 오랫동안 염색을 하지 못해 백발이 된 할머니가 낯설었다. 할머니도 나와 동생이 낯설었는지 못 알아보는 눈치였고, 이름을 말하자 그제야 알아보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시 할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 황급히 자리를 떠나 눈물을 훔쳤다.


있을 때 잘하지.


할머니를 떠나보내면서 이 말이 자꾸만 떠올랐고, 이 말에 너무 아팠다. 여행에서 좀 더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걸.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 어떤지, 뭐가 맛있고 뭐가 좋은지, 돈 생각 말고 여기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좀 묻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볼걸.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눈물은 좀 참고 오랫동안 할머니랑 눈을 맞출걸. 말을 못 하는 그녀를 대신해 나의 이야기를 좀 들려줄걸.


이런 후회가 반복될까 봐 두렵다. 부모님과의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려 하면 불편해 집에 가고 싶고, 혼자 있는 시공간을 달라고 남편에게 요청하고, 만나자는 친구의 제안에 때때로 귀찮아하는 나니까.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고, 어서 헤어지고 혼자 있고 싶다고 내향형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다음에 또 만나면 된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나는 있을 때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 계속 이렇게 산다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마다 후회하고 아파할 것이다.


다행인 건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있을 때 잘하는 것. 명확하다. 늘 곁에 있어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는 것, 함께 하는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아침부터 오늘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어제도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냈던 지라 외출에 약간의 부담이 있긴 하지만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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