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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회사야 잘 있거라

또 떠나는 프로회피… 아니 이직러.

by 읽쓴이

계절이 봄을 떠나 여름으로 오는 길이 길고 은근슬쩍하다. 계절은 코 베어가는지 모르게 왔다 간다더니만 이번 봄도 꼭 그랬다. 비가 줄곧 오더니만, 또 여름 앞에서 한가롭게 춥기도 했다. 갑자기 한 낮온도가 30도가 되어버리고 담벼락 장미를 쨍하게 피워냈다.


우리 집 파키라 화분도 오늘 잎 하나를 떨궈냈다. 상한 게 아니라 봄에 성실하게 활동했으니 한 놈을 떨구는 것이다. 새로이 날 잎에게 영양분을 몰아주기 위해서.


계절이 착실하게, 또 한가하게 여름을 길러내는 동안 나는 무얼 했나. 오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둔 뒤, 이직한 회사에 3개월 다니다가. 또. 지금. 다니는 회사를 떠날 날을 앞두고 있다. 스스로 프로이직러라고 종종 칭하긴 했지만, 사실 프로이직러보다는 프로회피러가 나를 표현하는 알맞은 단어가 아닐까. 성실하고 착실하게 익어가는 계절처럼 나도 좀 익어갔으면 좋겠는데 아직 떫은맛만 나는, 감나무에 달린 초록색 열매 같다. 언제 익을래. 언제 철들래.


나는 아쉬운 것들을 두고 잘 떠나는 사람, 미련을 한가득 안고서도 기어이 떠나는 사람이다.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다가도 결국 문턱을 넘는다. 아직 내 감은 익을 시기가 아닌 거겠지. 내 감도 익을 때가 언젠가 오겠지 생각하며 떠난다. 견디는 일이 아니라, 해내는 일을 하러 떠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야 잘 있거라. 언젠가 잘 돼서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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