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기 위해 노력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가니까
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그 아이는 참 예쁘고 다정했다. 공부도 잘했고, 누구에게나 생글생글 잘 웃어 반에서 인기도 많았다. 전학 온 나는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그 아이가 생일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친하지도 않은 나를 초대해 준 그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 아이의 집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집은 창문을 열면 옆집이 보였는데, 그 아이 집에서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다는 바닷가에만 가야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저 신기했다. 내가 눈만 뜨면 잔소리를 하는 우리 엄마와 달리, 그 아이의 엄마는 온화하고 따스하게 나를 맞아 주었다. 더우나 추우나 단칸방에 온 식구가 모여있는 우리 집과는 달리 그 아이는 자기만의 방이 있었다.
부러웠다. 예쁘고 다정하고, 공부도 잘하며 언제나 웃는 그 아이가. 그 모든 게 그 아이의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나도 저런 데서 살면 예뻐질 수 있을 텐데. 다정하고, 공부도 잘하고, 누구에게나 생긋 웃어 보일 수 있을 텐데 싶었다.
난 늘 ‘여유’ 있는 사람들을 질투했다. 고등학생 때는 공부만 해도 되는 애들이 부러웠다. 대학생 때는 해외 연수를 가는 애들이 부러웠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방학이면 나는 알바를 했다. 부모님이 하라고 한 적은 없지만 손 벌리기 싫었고, 알바라도 해야 학기 생활을 할 때 한 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까. 방학 때 어떤 학원을 다닐까 어디로 가서 연수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 속에서 나는 무슨 알바를 할지 고민했다. 이때까지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여유에 부러움은 시들해졌다. 많이 벌지는 못해도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산다고 해도 나 하나쯤은 책임질 수 있었으니까. 나를 먹여 살리는 감각이 좋았고, 내가 만든 한 뼘의 여유가 자랑스러웠다.
그러자 다른 여유에 질투가 생겼다. 이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부럽더라. 어떤 일에 충분히 고민하는 사람,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관대한 사람,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사람 말이다. 나는 항상 급하고 불안하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진득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빠르게 실행해 보고 결과를 보려 하고, 시간대별로 설정해 둔 투 두 리스트를 처리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다른 일이 생기면 짜증이 났고,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과의 호흡이 답답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컨트롤을 잘 못해서 그런 것 같아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여러 번.
그 시기에 동료 A를 만났다. A는 초등학생 때 생일 파티에 초대한 그 아이 같았다. 다정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었다. 일도 잘했다. 자기 일만 잘해도 되는데, 항상 내게 도울 게 없냐고 물으며 나를 챙겼다. 동료의 일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는 나와는 달랐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함께 고민하며 레퍼런스를 찾아주었다. 손이 많이 가는 잡무에 투덜대던 나와는 달리, A는 같이 후다닥 하고 퇴근하자며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나는 바쁠 때 누군가 말을 걸면 시간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을 해주더라. 그의 여유로움에 질투가 났다.
그의 태도를 닮고 싶어 노력했다. 의식적으로 다정하게 말하려 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함께 일한 지 오래되어 그를 닮아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종종 닮고 싶은 동료라는 피드백을 받으니 조금은 닮아있는 것 같고, 덕분에 일하며 약간의 여유와 여러 즐거움, 성취감도 알게 되었다.
질투. 글을 쓰고 사전적 의미를 다시 찾아보았다.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 다행이다.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아서. 질투하던 여러 여유를 닮기 위해 노력해 와서. 알바와 회사 생활로 돈을 벌며 나를 먹여 살린 경제적 여유부터 멋진 동료를 보고 배우며 만든 내 마음의 여유까지. 질투하는 건 부끄럽고 나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는 마음껏 질투해도 되겠다. 내가 질투하는 것들은 단순히 미워하고 시기하는 게 아니라 동경하는 것이니까. 닮기 위해 노력하고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가니까.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나처럼 질투하고 있다면, 동경하고 있다는 뜻일 터이니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