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보였다.
나는 언제나, 늘 어떤 ‘타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땐 이름이 외자였던, 머릿결이 비단결 같던 친구처럼 되고 싶었다. 중학생 땐 춤도 노래도 잘하고 웃는 모습이 예뻤던 친구처럼 되고 싶었다. 고등학생 땐 친구의 성격 자체가 부러워 그 친구가 되고 싶었다. 다정하고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그런 성격이 나온다고 믿었다. 대학생 땐 편견 없이 맑고, 대화할 때 어색함 없이 다가오는 친구처럼 되고 싶었다. 전공 특성상 팀을 이뤄 제안서를 쓰는 대회나 과제가 많았기에, 주변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이들의 모습이 더더욱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되고 싶은 타인의 모습이 더 많아졌다. 일을 잘하는 선배, 센스 있는 동기, 유머러스한 후배.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멋졌고, 나는 그들의 장점만 쏙쏙 뽑아 내게 입히고 싶었다.
그 마음은 특정 사람에게만 향한 게 아니었다. 운동할 때면 지구력 좋은 사람이 부러웠고, 대화에선 어휘가 풍부하고 자신의 의견을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히 표현하는 이들이 멋져 보였다. 가끔 영화나 예술작품을 볼 때면, 해석할 수 있는 자신만의 축적된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장면 하나, 대사 한 줄을 다르게 읽어냈고, 그 이유가 그들의 경험과 내면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베낄 수 없는 내면의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는 늘 타인의 특정한 면을 동경했고, 그러는 동안 늘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불쑥 올라올 때마다, 내 장점을 억지로 찾으려 애썼다. 나는 그래도 이건 잘하니까, 이건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나 자신이 더 미워졌던 것 같다.
타인은 반짝이는 구슬알을 여럿 안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턱없이 초라한 구슬 하나만을 갈고닦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초라함이 들킬까 봐 애쓰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런 나 자신이 조금씩 좋아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부럽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나서부터였다. 타인의 멋진 점을 마음껏 부러워하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칭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발밑, 부러움에 눌려 있던 시선을 들어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자 보였다. 수줍어하며 웃는 얼굴과 머쓱해하는 표정. 나와 부러움 사이에서 균형을 잃을 때마다 쉽게 자기 비하에 빠지곤 했지만, 이제는 제법 그 사이의 거리를 유지할 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격한 부러움에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어떤 날은 여전히 '나는 왜'라며 이상한 구렁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솔직하게 드러내며 타인을 바라보는 법을.
부러워하는 게 나쁜가? 누군가의 멋진 면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 때, 나 역시 조금씩 나아간다. 부러움은 이제 나를 뒤처지게 하는 무게가 아니라, 더 단단한 나로 이끄는 힘이다. 그래, 질투는 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