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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녀_애증하는 OO] 매번 절교를 생각한다

20년 지기 담배에 관하여

by 백수쟁이

스무 살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고3 시절이 너무 지난했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였으니까. 스무 살이 되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스무 살은 자유 그 자체, 그동안의 억압을 모두 박살 내겠다고 내내 다짐했다. 술과 담배를 시작한 건도 스무 살 때의 일. 자유하면 이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었다. 흥청망청 술을 마셨다. 술을 즐길 줄도 내 주량도 모르면서.


담배를 시작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스무 살에 연애를 했고, 두 살 많은 남자친구가 담배를 폈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이 멋있어 보였고, 그중 하나가 담배여서 따라 폈다. 나도 괜히 멋있어진 기분이었다. 당시엔 여자 흡연자가 별로 없고, 대부분 몰래 피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대놓고 폈다. 가끔 나를 흘깃 보는 시선에, ‘뭘 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거 처음 보냐’라는 생각으로 우쭐했다.


지금도 담배를 피운다. 올해 내가 마흔이니까 이십 년을 폈고,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다. 담배는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부산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할 때도,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할 때도, 고시원에 살 때도 자취방에 살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매일 나와 함께였다.


담배는 말없이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였다. 언젠가 겨울 방학 때 강남에 있는 고시원에 살았다. 옥상에 흡연 구역이 있었고, 아침마다 의식처럼 밀크 커피를 한 잔 타서 담배를 한 대 피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날도 커피를 들고 옥상 문을 열었다. 밤 사이 쌓인 눈에 온 세상이 하얬다. 아무런 발자국이 없이 평탄하게 쌓여있는 눈 위로 한 발 자국씩 내디뎠다. 난간에 커피를 올려두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요가에서 심호흡하듯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 행위에 집중했다. 그때는 참 아침이 싫었다. 눈 뜨면 알바를 하러 가야 했으니까. 매일이 고된데, 앞 날은 또 어떻게 될지 막막해하며 하루를 버거워하던 시절, 담배 한 대의 위로로 아침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 시기를 잘 지나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도 담배는 조용히 자기를 태우며 내 곁을 지켰다. 졸린 눈을 비비고 야근을 해야 할 때 나를 다독였고, 흥청망청 취해가는 회식 자리에서 잠깐의 숨구멍이 되어 주었다. 회사에서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담배 한 대를 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게 담배는 장댓비를 피하게 하는 우산이었고, 지친 회사 생활에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십 년을 친구처럼 지냈지만, 내가 매번 절교를 생각하고 있다는 걸 담배는 알까. 꽤 오래전부터 담배를 끊고 싶었다. 더 이상 담배피는 내 모습이 좋지도 않고, 우쭐댄 것도 부끄럽다. 무엇보다 내게 더 이상 자유의 상징도 아니다. 오히려 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의존하고 있는 걸.


회사에서 회의가 조금만 길어지면 담배를 피고 싶어 회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가족들과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은 나의 흡연을 모른다. 식사 후 흡연, 이른바 식후땡은 흡연자의 기본 중 기본인데 가족과 식사하면 이걸 못 하니 얼른 집에 가고 싶다. 기차나 비행기를 탈 때도 흡연 걱정이 먼저다. 이 시간 동안 담배를 못 피는데 괜찮나, 이런 생각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담배가 피고 싶다. 확실히 중독이다.


끊으려고 노력도 해봤다. 니코틴 패치도 붙여봤고, 며칠씩 안 피운 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담뱃값을 크게 인상했을 때는 정말 끊을 생각이었다. 그 돈 주고는 담배를 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건 잠깐이었고, 다시 나는 담배를 물고 있더라. 실망스러우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담배가 밉기만 하다면 쉽게 절교할 수 있을 텐데, 추억이 많아 어렵다. 그건 인정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과거의 추억에 머물러 있는 늙은이가 될 것 같다.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 담배를 끊는 게 좋겠다. 어떻게 끊으면 좋을지, 일단 담배 한 대 피면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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