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의 만족스러운 선택과 49를 잊는 지혜
인생에 100으로 만족스러운 선택은 별로 없어요. A와 B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을 때, 보통은 51:49로 만족과 불만족의 차이가 크지 않죠. 그래서 51의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고, 49를 잊고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예요.
얼만 전 유튜브에서 들은 말이다. 오래 이 말을 곱씹었고, 그때마다 결혼 생활을 떠올렸다.
결혼 전 혼자서 꽤나 만족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 후 이 만족감이 깨질까 두려웠다. 그를 사랑하지만 결혼이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결혼을 선택하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널뛰기 하듯 오락가락했다. 신혼집을 구할 때 만져보지도 못한 거대한 금액 앞에서 쪼그라 졌지만 신혼집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핑크빛 신혼 생활이 펼쳐져 설레곤 했다. 허례허식은 싫다고 외쳐댔지만 어른들의 바람대로 주례를 추가하고, 예단을 준비하는 내가 마치 꼭두각시가 된 것 같아 무기력해졌지만 결혼식 날엔 그 누구보다 행복해하며 식장을 휘젓고 다녔다.
결혼 전 오래 연애한 터라 한 집에서 남편과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시행착오 없이 지혜롭고 현명하게 결혼 생활을 할 거라는 근본 없는 우월감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은 와르르 무너졌지만. 결혼 전에는 불안했다면, 결혼 후에는 불만이 많았다. 나와는 다른 남편의 라이프 스타일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기 싫었다. 청소와 정리가 싫어 애초에 잘 어지르지 않는 나와 달리 남편은 평소에는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 마음 잡고 한 번에 정리하는 스타일이었다. 요리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정리를 하는 나와 달리 설거지 거리를 산처럼 쌓아두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매사에 여유로운 남편과 달리 순도 100 프로의 J인 나는 남편이 답답했다. 외출 준비를 해도 항상 내가 먼저 끝내고 기다리는 게 일상. 가족과의 시간 (여기는 부모님과의 시간도 포함이다)을 소중하게 여기는 남편과 달리 나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데, 가족과의 시간을 제안하는 남편이 꼭 내 생활을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좋은 점도 많다. 퇴근 후 집에 가면 멀리 여행 다녀온 집주인을 맞이하는 반려동물처럼 그는 날 반기고 안아준다. 이따금씩 지하철로 퇴근할 때면 역으로 마중을 나온다. 요리를 잘해서 맛있는 음식을 일주일에 일곱 번은 먹을 수 있다. 계피차가 맛있다고 했더니 계피자가 떨어지지 않도록 한 솥씩 끓여둔다. 어떤 물건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몰래 주문해서 선물해 주고, 이따금씩 꽃이나 엽서를 건넨다. 저녁을 함께 하지 못할 때는 내가 저녁을 거르지 않도록 배달 음식을 보내준다. 좋은 거리감을 유지하며 챙겨주시는 다정한 시부모님이 가까이 계신다. 남들이 들으면 이상할 법한 우리만의 유행어나 별명으로 하루종일 깔깔깔 웃을 수도 있고, 야심한 밤에 즉흥적으로 떠나는 드라이브도 즐기고, 한 공간에서 남편은 게임을 나는 피아노를 치며 각자 취미생활을 한다.
결혼 생활이 100으로 만족스럽냐고 물으면 오래 대답을 골라야 하지만, 어쨌든 그는 가장 나와 가까이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살피고 또 나를 가장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건 단번에 답할 수 있다.
여러 불안과 혼란 속에서 나는 결국 결혼을 선택했다. 불안과 혼란이 가득한 결혼 준비에서도 설렘과 행복이 있었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 불만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좋은 점이 있다. 그렇다면 내가 만족스러운 51의 선택을 했다고 믿고 좋은 점에 집중해야겠다. 그러면 49의 아쉬운 부분은 서서히 빛을 잃고 51의 만족스러운 부분은 더욱더 선명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