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이어폰'에 대해 요즘 드는 생각

단절과 몰입 사이, 소리가 가진 힘

by 아득

길을 걸을 때면 이어폰을 낀다.
무언가를 꼭 듣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걷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어폰을 끼우는 순간, 뭔가에 둘러싸인 듯한 안정감이 생긴다.
말 걸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울타리.

소리를 듣는다는 건,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를 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결국, 이 시간과 이 감정에 어떤 배경을 깔아줄지를 정하는 일이고,
노이즈캔슬링 기능이든, 적당한 볼륨이든, 그건 내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지에 대한 태도 같다.


이어폰을 낀 채로 세상은 조금 멀어진다.
사람들의 목소리, 차 소리, 에어컨 바람 소리 같은 것들이 흐려진다.
아예 차단되기도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마치 주변의 번잡함이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니까.

하지만 그게 익숙해질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대화, 길가에 핀 꽃, 멀리서 들려오는 트럭의 후진음 같은 것들.
이어폰을 끼고선 들을 수 없던 소리들이 있다.
그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시간 속을 지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감각들이다.

요즘은 이어폰을 낀 사람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의 침묵은,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소리만 들리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이어폰 없이 걷는다.
처음엔 허전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그런 날엔 내 발소리와 자전거 바퀴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대화들이 마치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어폰을 낀 채로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어폰을 빼고 나면, 세상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소리를 듣는다는 건 결국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무를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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