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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Jul 25. 2022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

최근 본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 이런 자막이 뜬다.

"우리는 이 땅에 괴롭고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


삶의 희로애락을 아주 섬세하게 잘 그린 드라마가 끝나면서 모든 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작품을 만든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흐뭇하면서도 왠지 행복에 대한 세상의 강박이 반영된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행복해지는 방법이 수없이 나온다. 여기저기 행복에 관한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너도나도 행복을 말하고 행복하기를 빈다. 얼마나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지 느껴진다. 그런데 씁쓸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바란다는 말은 지금은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 없기 때문에 바란다. 없는 행복이 있기를 바라고, 잠시 지나간 행복이 다시 오기를 바라고, 행복이 계속 머물기를 바라며,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며 삶의 이유에 행복을 갖다 댄다. 많은 이가 우리가 사는 목적이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말에 공감하며 행복한 삶을 꿈꾼다.


모두가 행복을 말하니 여기서만큼은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 나도 나의 행복을 바란다. 그런데 사는 목적으로 행복을 생각하진 않는다. 늘 행복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행복이 오면 행복해하고 행복이 가면 그런가 보다 한다.

행복이 없다고 불행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 큰 삶의 바다가 있다. 수많은 감정과 다양한 희로애락의 스펙트럼이 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양극단에만 주의를 너무 기울일 필요 없다. 순간순간 다양한 삶의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일상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고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삶이기에 괜찮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행복이나 불행 또는 다른 감정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생의 목적으로 행복을 들면 어쩌면 우린 다 실패할지도 모른다. 행복도 잠시고 불행도 잠시다. 왔다가 지나간다.


행복은 실체가 따로 없다.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행복이 거기에 있다. 행복하려면 그저 자주 행복을 느끼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다"라고 느끼면 된다. 또한 행복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으면 굳이 행복이라는 말을 쓸 까닭도 없다. 그때그때 이미 알고 있는 다양한 감정의 이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느끼면 된다. 아니면, 이름 없이 오롯이 그 감정을 느껴도 된다. 굳이 기존의 개념에 끼워 맞출 필요 없다. 삶은 우리가 배워온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정은 언어와 개념 이전의 것이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정해진 것이 없다. 우리가 말하는 삶의 이유는 현재의 시점으로 삶을 해석하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이 달라지고 상황이 바뀌면서 시점도 변하고 삶의 이유도 변한다. 굳이 행복이라는 이유에 고정할 필요 없다. 또, 굳이 이유를 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미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하기에 따로 이유가 필요 없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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