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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um Mar 15. 2022

프러포즈

불법현수막

남자 여자가 만나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안타까워질 때쯤, 이 사람이라면 인생 걸고 살아봐도 좋겠다! 생각이 뇌리에 팍! 꽂힐 때쯤.. 남과 여는 양가 어르신들을 뫼셔놓고 백년가약을 맺는다

百年佳約     백년가약

 일백백     해 년(연)   아름다울 가   맺을 약

「백 년을 두고 하는 아름다운 언약」이라는 뜻 부부가 되겠다는 약속.


내 나이 26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다.

동갑내기 술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안동 남자.  

뭐가 그리 급했는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약 6개월 사귀고 우린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결혼은 둘 다 처음이지만 텔레비전에서 늘 보던 화려한 프러포즈는 은근 기대였고, 은근한 로망이었다.

뭐.. 당시 상당히 털털한 성격에 보이쉬한 나는 겉으로는 손사례 쳤지만, 나도 한번 하는 결혼, 누구나 자랑하고 싶은, 기억에 남는 프러포즈가 받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 전화가 왔다.


"자기야 출근 준비해? 언제쯤 출발해?"

"음.. 약 20분 안에 나갈 듯~  왜?"

"아니 그냥~~  알겠어~  준비 잘하고~  "

 참.. 실없긴.. 풉..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목적 없는 전화는 당시 있을법한, 막 결혼을 약속한 관계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정문이 보일 때쯤, 평소 보이지 않던 뭔가가 보인다.

차츰 그 무엇인가가 윤곽이 잡히는 순간,

"어? 어? 어!! 이게 뭐야?"



길 건너 현수막에 내 이름이 떡하니 쓰여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혜옥이" 인지 몰랐지만,   나는 알아볼세라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울리는 전화,


"이거 뭐야? 언제 이렇게 했어? 대박~~  정말 놀랐잖아~이 글씨는 또 뭐고~고마워!"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예비 신랑은  그저 나의 반응을 살피고 뿌듯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분 좋은 통화를 하며 출근길을 도보로 이동하는데 전화기 너머 예비신랑이 뒤를 보란다.


설마..


꺅! 내 뒤를 따라오면서 반응을 살피고 전화하며 오는 중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아침  유쾌한 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시작했었다

.

.

26살 여름 끝나갈 무렵 그날의 기억을 단편적으로 기록해본다.

꽃다발에 반지 건네는 아주 보편적인 프러포즈는 못 받아보았지만  나는  불법현수막으로 프러포즈받은 여자다.

[이 현수막은 퇴근길.. 사라져 있었다. 불법이니..]

어찌 보면 오글거리고 닭살스러운 행위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에게 맞춤형 이벤트가 아녔을까 싶다.

.

.

그렇게 결혼한 어린  신랑 신부는 4천3백에 시작한 전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되었고  7천짜리 전셋집에서 첫째가 태어났고  1억 3천짜리   첫 번째 나의  집에서 둘가 태어나 살아내었다.


아직 은행빚이 많지만  일찍 결혼한 탓에 동갑내기 45살 부부에겐  18살 딸아이와 14살 아들  9살 개딸과 5억이 넘는 내 집에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다.

19년 차 부부답게 적당히 건조하고 적당히 친한 관계이다.


26살의 풋풋한 예비신랑의 불법현수막 프러포즈를 기획하고 설치할 때의 마음이 새삼 느껴져서 글을 쓰는 지금 미소가 지어진다.


아르바이트로 시작된 간판집 젊은 사내는 영원한 간판 사인업계의 아이돌처럼 지금도 업으로 삼고 있다.

[고된 일이라 젊은 애들이 지원을 안 한다더라.  그래서 45살이 되어도 늘 막내라고 한다]

때 낀  손, 상처 입은 손, 먼지 가득 작업복, 무겁디 무거운 안전화, 26살의 풋풋한 젊은이는 이제 없다.


한집안의 가장으로 19년을 살아오면서 생긴  투박한 손. 두둑한 뱃살만이 있다.

이번 출장에서 돌아오면 말없이 등 두드려줘야겠다.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그리고 부쩍 힘겨워하는 요즘  우리 이 정도면 참 잘 살아내고 있는 거라고 큰소리로 얘기해주고 싶다.

신혼여행지 사이판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어떤 프러포즈를 받았거나 해주었는가?  라떼는 말이야~  댓글로 언급해주길 소심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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