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제부터 친했더라?
최근에서야 글과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만년필을 사고 나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2019년 일기를 발견했다. 일기를 꺼내 읽다 보니 그로부터 몇 년 전에 썼던 수첩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군에서 쓰던 수양록 느낌인데, 26살 군인 아저씨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이었다. 올해로 서른네 살이 되었으니, 적어도 8년 정도의 기록은 띄엄띄엄 있는 셈이다.
연휴 마지막 날,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앉아 있다.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전투적으로 책을 읽다가 또 무엇인가 쓰고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앉아 있노라니 문득 책이 나를 끄는 것인지 내가 책을 끄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글을 쓰며 나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책 속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지난날을 한 번 회상해 본다.
글과 관련해서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장소는 버스이다. 90년대 초반,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다녔다. 버스에 앉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간판을 읽었던 기억이 처음 기억이다. 간판을 읽기 전에 낱말을 통째로 외우는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거기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간판들을 부지런히 읽었다. 엄마나 어른들이 칭찬을 해 주었는지 어쩐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다음 기억은 여덟 살쯤 되었을까, 초등학교 1학년때 했던 받아쓰기 공책이 기억이 난다. 2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줄 간격을 가진 노트에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빨간색 외투를 주로 입으셨던 김 씨 성을 가진 담임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녀는 매일같이 받아쓰기 시험을 치게 했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늘 채점을 했는데, 빨간색 색연필로 80점이나 90점 표기를 했던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시험이란 모름지기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법도 한데, 어쩐지 받아쓰기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그다음 글과의 기억은 일기장이다. 당시에 학교에서 지정해 준 일기장이 있었다. 일기장은 초록색 표지로 되어있었고, 학교 전경이 새겨져 있었다. 원고지처럼 내부가 칸칸이 나눠져 있었다. 한 면의 3/4 정도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아래쪽부터 해서 다음장 정도까지는 일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오늘’로 시작하는 글을 많이 썼다. 엄마와 선생님은 ‘나는’이나 ‘오늘’이라는 말은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말이라고 했다. 일기기 때문이고, 당연히 행동의 주체는 ‘나’ 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는 계속 ‘나는 오늘’이라는 말로 일기를 계속 썼던 기억이 난다. 이따금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하시고는 도장을 찍고 의견을 적어 주시고는 했다. 일기를 쓰는 일은 숙제처럼 여겨져 지루했지만, 선생님이 남겨준 의견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숙제라는 의무감과 선생님의 짤막한 글이 동기가 되어 열심히 일기를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지만, 10권 남짓 되는 초록색 일기장이 생각이 난다.
5학년 즈음 되었을 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독후감을 써서 상을 받았다. 책이 주는 교훈과 같이, 나도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글이었던 것 같다. 원고지에 글을 써서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 ‘원고지 쓰는 법’을 열심히 배웠던 기억이 난다. 두꺼운 원고지 한 묶음이 집에 있었다. 앞장부터 쓴 후에 마침표를 찍고는 첫 장부터 글을 떼내어 고이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책을 좀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 종류를 많이 읽었다. 지금처럼 놀거리가 많지 않았던 때라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만일 내가 지금 중학생이라면 그만큼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 있었을까. 기억나는 책들로는 <비뢰도>, <묵향> 이런 것들이고,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도 한 가지 기억이 난다. 아직도 가상현실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니 당시로서는 꽤 시대를 앞서간 발상이었다. 그 외에 처음으로 <죄와 벌>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문학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찌나 그렇게 이름들이 다양한지 꽤 애를 먹었다. 라냐의 내적 갈등과 살인 후의 당혹감 같은 것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이해를 제대로 하지도 못했지만, 왜인지 그런 글들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있어 보이고 싶은’ 사춘기 소년의 욕심 같은 것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 넉넉한 가정 형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책 사는 일에 있어서는 돈의 사용처를 두 번 묻지 않으셨다. 무슨 책을 사든, 다 읽든 그렇지 못하든 관여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다양한 책을 읽어볼 기회를 얻었고, 책을 읽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금세 덮고 또 다른 책을 찾아볼 수 있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읽기와 친숙해질 수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살 수 있는 책이었다면, 책을 살 때마다 독후감을 써서 내야만 했더라면, 끝까지 읽지 못하면 혼이 났다면 지금처럼 책과 친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교과 공부 중에는 국어 시간을 유난히 좋아했다. 나를 유난히 아껴주셨던 국어 선생님 성함도 아직 생각이 나고, 토요일마다 학급 친구들과 했던 가로세로 낱말퀴즈도 생각이 난다. 그 시절엔 텔레비전에서 우리말 겨루기 같은 게임을 하면 꼬박꼬박 챙겨 보면서 공부했던 기억도 난다. <국어 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책 제목이 한 권 생각이 난다. 줄여서 ‘국밥’이라고 되어있던 표지가 인상적이고, 유의어들을 구분해서 습득할 수 있었다. 단어에는 뜻뿐만이 아니라 뉘앙스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문맥을 이해할 때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했다. 이때부터는 사회, 경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읽고 이해하는 훈련은 나도 모르게 되어 있었는지, 수험생 시절 내내 국어 시험 시간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일기 같은 걸 따로 쓰지는 않았지만 플래너를 꾸준히 썼다. 매일 할 일을 기록했고, 중간중간에 짧게 감상이나 다짐을 적어 두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끊임없이 뭔가 기록하는 데 대한 열망이 계속 있었던 것 같다. 쓰면서 나를 독려할 수 있었고 수험생 시절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시간이 참 많았다. 0교시부터 야자가 끝나는 11시까지 학교에 있었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랐다. 일주일에 많으면 20시간 정도만 수업이 있었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는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았고, 없는 책도 구매 신청을 하면 곧 받아볼 수 있었다. 새내기 시절 강연을 들었는데, 책 1000권을 읽지 않고서는 대학생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전공했던 경제학 관련으로 1000권을 읽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철학, 인문학, 사회학 같은 책에 끌렸다. 권 수를 다 채웠는지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읽고 썼다. 책에 대한 감상, 나 자신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검은색 노트에 여러 권 써 모았다. 성적 맞춰 진학한 전공 공부에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내면을 탐구하며 읽고 쓰고 살아가는 데 시간을 많이 썼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글을 썼다. 내가 있던 곳은 W시, 소수민족 자치구로써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언어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었다. 당시 학교에는 나를 포함해 한국인 학생이 세 명뿐이었다. 낯선 곳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끌어안고 지면에 나를 꺼내 놓았다. 쓰다 말다 뚝뚝 끊기는 기록의 연속이었지만 길게 보았을 때 쓰기는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이후로는 군에서 썼던 수양록 비슷한 일기, 취업 준비생 시절에 썼던 고뇌의 기록 같은 것들이 남아 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책 속에 둘러 쌓여 자연스러움을 느끼며 언제 이렇게 책이랑 친해질 수 있었을까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내 삶은 읽고 쓰는 것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재미있어서 글을 썼고, 인내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글을 썼다. 불안하기 때문에 글을 썼고, 궁금하기 때문에 글을 썼다. 지금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비슷하다.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궁금한 것이 많다. 불안한 나를 다독이기 위해서 글을 쓴다. 모르는 것들을 더 알기 위해서 글을 쓴다.
끊길 듯 가늘게 이어져 오던 나의 글쓰기는 만년필 한 자루를 만나면서 굵은 선이 되었다. 만년필 한 자루는 20만 원 남짓하는 물건일 뿐이지만, 이 펜은 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확성기가 되었다. 내 안의 ‘쓰는 마음’을 불러내 주었다. 이제는 쓰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이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나는 쓰기와 함께 삶을 살아갈 것 같다. 삶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있고 나이만 든 나는 아직도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을 가끔 느낀다. 저마다 삶을 걸어 나가는 방식이 있을 테지만 나는 글과 함께 내 삶을 품으려 한다. 써서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책을 많이 팔지 못해도 좋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적어도 글 쓰는 동안 행복했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글 쓰는 인생의 2막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많은 글을 쓰고, 좀 더 쓸모 있는 글을 쓰고자 노력해 볼 심산이다. 내 글이 무엇인지 발견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고,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독자가 만나는 지점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서 삶을 재발견한 기분이다. 평생 나와 함께 있었지만 깨닫지 못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글쓰기가 내 옆에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애써 외면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함께해 온 글쓰기와 앞으로 남은 삶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