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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14. 2024

이럴려고 맥북을 산 건 아니지만

두 해 전 여름이었다. 영상 편집을 배워보겠노라며 맥북을 덥석 샀다. 핸드폰과 태블릿 PC 모두 갤럭시를 사용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맥북이 사고 싶었다. ‘맥북 병’에 걸려 몇 달을 검색을 했다. 영상 편집을 하고 싶다며 직장 동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실 사용자 후기를 물어보기도 했다. 


“다른 기기가 다 안드로이드면 사용하기 불편해.”

“다른 노트북으로도 충분히 영상 편집 할 수 있어.”

“영상 편집 하긴 할 거야?”


맥북을 뭐 하러 사느냐는 조언은 구구절절 다 옳은 말 뿐이었다. 사실 영상 편집을 해보겠다는 것도 일종의 핑계였다. 그때는 왠지 그걸 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조언을 구하는 척 여러 의견을 물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맥북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사야만 했다. 고민하는 것도 지겨워 냉큼 버튼 한 두 번으로 주문을 마쳤다. 택배 기사님이 문 앞에 두고 간 맥북을 누가 가져갈 세라,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맥북을 집에 넣어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애지중지 수령한 맥북은 한동안 애물단지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영상 편집은 허울 좋은 구실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내겐 맥북을 사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거기에 가져다 붙인 ‘영상편집’이라는 동기는 진심 단 1% 뿐이었다. 영상 편집을 하려면 영상을 찍어야 하고, 영상을 찍으려면 어디 외부활동을 하거나 하다 못해 혼자라도 찍어야 했는데 좀처럼 시간을 내 영상을 찍기가 어려웠다. (라고 쓰고 귀찮았다라고 해석한다) 마침 지금 아내(구 여자친구)도 영상 찍는 걸 매우 싫어해서, 그렇게 편집이라는 구실은 유야무야 사라져 버렸다.


맥북은 예쁜 쓰레기가 되었다. 윈도우 운영체제랑 많이 달라 불편하기도 했고, 모바일 기기와 연동도 안 되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앱스토어 계정도 달라서 사용하던 애플리케이션도 없고, 프로그램 하나를 다운받으려 해도 맥 OS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영상도 한두 번 찍어 보았으나 노트북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안드로이드 핸드폰은 애플 기계와 친하지 않았고, 나는 또 주변기기들을 하나 둘 사야 했다. 허브도 사고, USB도 사서 영상도 옮겨 봤지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어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기껏 비싸게 주고 산 맥북은 유튜브 시청용이 되어 자리만 차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가끔 카페에 가면 맥북 특유의 갬성을 뽐낼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유튜브 시청, 블로그 포스팅 같은 일 정도였다. 6개월쯤 지나서 맥북을 ‘당근’ 할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오기가 생겨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쓰지도 않은 물건을 몇 십만 원이나 깎아서 팔기에는 억울했다. 안 쓰면 안 썼지 깎아서 팔 수는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지금 맥북은 글 쓰는 용도이다. 유튜브로 가사 없는 긴 음악을 틀어 두고, 글쓰기 앱을 켜 글을 쓴다. 본래 야심 찬 의도에서는 많이 멀어지긴 했지만 내 기준 나름 고사양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기분도 꽤나 특별하다. 지금은 어딜 갈 때 꼭 들고 다닌다. 출근할 때도,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 나갈 때도 꼭 들고나간다. 쓸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혹시 몰라서 들고나간다. 얼마 전 아침 약속이 있어 나가면서도 꼭 가방에 넣어 챙겼다. 매번 노트랑 펜, 노트북을 백팩에 넣고 길을 나설 때면 아내는 늘 ‘거북이 등껍질’ 같다며 웃는다. 쓰지도 않을 거 왜 가져가냐며 묻지만 내 대답은 늘 “혹시 모르잖아.”이다. 정말 모르는 일 아닌가. 갑자기 글을 쓰게 될 수도 있다. 필요할 때 도구가 없는 것보다 잠깐 짊어지고 다니는 게 백 배 낫다는 판단 하에 매번 바리바리 싸들고 다닌다.


값비싼 가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맥북은 이제 내 보물 1호가 되었다. 작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면서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덧 많이 모였다. 이 글을 쓰면서 세어보니 25만 자 정도가 앱 안에 기록되어 있다. 모바일 기기랑 동기화도 안 되니, 애지중지 아껴야만 한다. 어디 백업이라도 해 두어야 될 것 같다.


안드로이드 핸드폰과 맥 OS는 연동이 안되어서 글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는다. 핸드폰으로 쓰는 글 따로, 노트에 손으로 쓴 글 따로, 노트북으로 쓴 글 따로 모두 제각기 흩어져 있다. 핸드폰이 휴대성이 좋으니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한 두 문장씩 적어두는 편이다. 시간이 나면 노트북을 펼친 뒤 핸드폰에 기록된 문장을 하나씩 곱씹으며 글을 쓴다. 연동이 안돼서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한 번 더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글감이라고 써 둔 것도 다시 보지 않으면 어느새 잊히고 마는데 한번 더 꺼내 읽고 노트북에 쓰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된다.


처음 ‘맥북 병’에 걸렸을 때 직장 동료들의 말을 듣고 윈도우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노트북을 샀어도 글 쓰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굳이 한 가지 우겨보자면 이만큼 특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영상 편집을 하는 용도로 쓰는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다는 사실이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윈도우랑 달라 불편한 점이 많기에 오히려 다른 용도로는 덜 쓰게 된다. 내게 이 고사양 노트북은 그저 글 쓰는 용도와 약간의 오디오 역할을 할 뿐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장항준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가 대화하는 걸 들었다.


“당신은 글만 쓰는데 그렇게 비싼 노트북이 왜 필요해?”


노트북 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추측컨대 장항준 감독이 사 주었다는 김은희 작가의 노트북은 맥북이 아닐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김은희 작가의 대답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예쁘잖아.”


물론 난 김은희 작가도 아니고, 이걸로 글을 쓴다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다. 그래도 왠지 내 도구가 특별하게 여겨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사고 싶어서 샀는데 어쩌다 보니 이걸로 글을 쓰고 있다.’는 말을 장황하게 해 놨다. 주말 내내 열심히 썼으니 이제 다시 거북이 등껍질에 넣어 두고 쉬어야겠다. 오늘도 내 말을 들어주고 글자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잠깐 찾아보니 김은희 작가의 노트북은 맥북이 아닌 것 같다. 찾아보지 말고 그냥 좋을 대로 생각했어야 했는데 하며 피식 웃는다. 좀 더 찾아보니 그녀는 노트북을 1년 반에 한 번씩 바꾸는데, 이는 자판이 다 닳아서 못 쓰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노트북을 거치해 놓고 다른 키보드를 쓰기 때문에 1년 반에 한 번씩 키보드를 바꾸는 걸 목표로 삼아 보아야겠다. 그녀가 그녀만의 글을 써내기 위해 치열하게 쓰듯이, 나도 나만의 글을 꼭 써야겠다 다짐해 본다. 앞으로 맥북과 함께 써 내려갈 글을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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