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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Jan 08. 2024

초보 부부

결혼하면 어느 날 아이가 불쑥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어나면 육아 시작인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아이는 아직 강낭콩만 한데 아내는 아무것도 먹질 못한다.

입덧하는 아내를 어쩔 줄 몰라하는 나는 초보 남편이다.


죽도 사 먹여 보고

갖가지 과일도 종류별로 먹어 본다.

사과, 망고, 귤, 딸기, 배, 단감 종류별로 맛봤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마다 찾아가 먹어 본다.

그래도 입덧은 가시질 않는다.


대신 입덧을 해줄 수는 없는데, 마음만 급해 어쩔 줄 모르겠다.

먹었던 음식 중에 괜찮았던 것들을 몇 개 추려 목록을 만들어 본다.

볶음밥 금지, 참기름 금지, 김치 금지. 

먹을 수 있는 게 정말 몇 가지 없다.

몇 안 되는 목록을 때마다 아내에게 권하며 하루하루 지낸다.


아내는 매일 점심을 밖에서 사 먹는 내가 안쓰럽다.

나도 매일 점심 메뉴 정하기가 고역이라며 은근슬쩍 아내에게 투정을 부려 본다.


며칠 뒤 집으로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보온 도시락통이다.


아내는 잠자리에 누워 내 도시락 메뉴를 생각하는 중이다.

아침에 계란말이를 말고, 비엔나 소시지에 칼집을 내 굽는다.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여 도시락통에 담아 건네준다.


마침 그날 부서장이 바뀌어 점심 회식을 하잔다.

난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도시락 먹어야 됩니다.

아내가 처음 싸준 거라서요, 저는 이거 먹겠습니다."


다들 식사하러 나가고, 빈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연다.

여유로운 식사, 맛있는 음식.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다. 아내의 사랑이 나를 사육하고 있다.

밥을 어찌나 눌러 담았는지 밀도 높은 한 숟갈을 열심히 씹어 본다.

전날부터 메뉴를 생각하고, 장을 봐 아침에 음식을 만들어준 아내 생각이 난다.


아내도 누군갈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싼 일이 처음이 아닐까.

꾹꾹 눌러 2인분은 될 것 같이 가득 담긴 도시락과

작은 손으로 분주히 움직이던 아내의 아침 모습을 번갈아 생각하며

아내도 초보겠구나 싶어 피식 웃는다.


우리 그래도 꽤 재미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처음이 되었고,

앞으로 남은 무수한 처음도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도 어떻게 낳는지 모른다.

산후 조리 하는 방법도 모르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모른다.

어른이 되는 방법도 잘 모른다.


우리는 그저 함께할 뿐, 초보인 건 변함이 없다.

그래도 어쩐지 즐거울 것만 같다.

계속 초보 부부로 지내고 싶다.


경험이 없어 어쩔 줄 몰라도 위하는 마음 하나 꼭 간직하고 살고 싶다.

할 줄 몰라서 버벅댈 때도 마음을 봐주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이런 우리도 점차 능숙해지겠지만, 조금은 엉성한 채로 계속 살고 싶다.

때론 조금 서투른 행동이 그 안에 마음을 더 잘 보여준다.


생활 곳곳에 담긴 엉성함 속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부부가 되고 싶다.

포장은 투박해도 그 안에 마음을 잘 봐주는 부부가 되고 싶다.

초보티 팍팍 나는 우리가 참 좋다.


우리는 초보 부부다.


사진 출처 : www.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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