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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Dec 17. 2023

안 당연한 것

태어날 수 있었던 것

대한민국에,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것

좋은 부모님을 만나 보살핌 받아 자라날 수 있었던 것

배곯지 않고 두 손으로 밥 먹을 수 있었던 것

사지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것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


아내를 만나 사랑하게 된 것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 것

우리 가정에 새 생명이 찾아온 것

오늘 아침에도 눈 뜬 것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사고 없이 운전할 수 있었던 것

외출했다가 돌아올 안온한 집이 있는 것

우리 가정에 찾아온 아이를 기뻐해줄 친구가 있는 것


저녁에 먹을 음식이 있다는 것

시간을 따로 떼 내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12년 전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남겨두신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읽고, 말하고, 쓸 수 있다는 모든 사실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남을 위해 내어 놓을 수 있는 돈과 시간이 있다는 것


삶은 아무런 이유 없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Think)하면 감사(Thank)하게 된다. 삶을 우연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우연일 뿐이고, 반대로 모든 것을 기적으로 여기면 모든 것이 기적이 된다고 한다.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삶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방식이다.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태어나 살아가는 것도 당연한 것, 글을 쓰는 것도 당연한 것, 한국에 태어나 먹고사는 일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삶에 당연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인생에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바로 ‘불평’이다. 당연함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인생은 불평과 아주 가까워지는 인생이 된다. 이미 주어진 것이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어느 누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는데 고맙다고 생각하겠는가? 


삶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생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시들해진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새롭지도 않고, 고마워할 일도 아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친절을 베푸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내가 돈을 냈기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는다고만 생각한다. 그분의 서비스가 없었더면 내 돈은 아무 소용이 없는 줄은 모른다. 그뿐이 아니다. 해가 뜨는 것도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으면 아침에 눈 뜨는 것이 당연하다. 새 하루를 고마워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응당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인생을 흑백 사진처럼 여기게 된다. 생기가 없으며 세상은 온통 당연한 것들 뿐이다.


둘째는 불평과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류의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도 당연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날 당연함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예를 들면 단골 식당이 문을 닫아서 아무리 돈이 있어도 그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이들 생각에는 당연히 내가 돈을 내면 음식을 내주어야 할 식당이 없으니 불만이 생긴다. 발을 다쳐서 두 발로 걷는 당연함을 빼앗길 수도 있다. 당연히 두 발로 걸어 다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여기는 권리를 빼앗길 때 가장 크게 분노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당연한 사람은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잃게 되면 억울해하고 분함을 느낀다.


이는 뿌리 깊은 마음의 병이다. 당연함 뿐인 그들의 인생은 점차 불평으로 채워지게 된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삶은 색을 잃어버리고,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낡아진다. 이들은 당연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주로 하게 된다. 모든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가끔 발생하는 ‘당연하지 않음’이 견딜 수 없다. 정말로 이들에게는 불평이 점차 늘어난다. 마땅히 자기 것이어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기가 없다.


삶은 과연 당연한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내 삶에 일어났던 일들을 회상해 본다. 위에 나열한 것들 중 단 한 가지라도 당연한 것이 있는가. 부모님이 만나 가정을 이룬 것부터, 엄마가 첫째 아이를 유산하고 나를 낳은 것까지. 내 삶은 부모님의 삶이라는 기적,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했던 양가 부모님의 가정과 시대가 모두 엮여있는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시만 멈추어 생각해 보니 지금 내 코로 호흡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운 일들 뿐이다.


“고맙다.”

“감사하다.”

“덕분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들이다. 삶에는 당연한 것들이 단 한 개도 없다. 가끔 내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뿐이다. 삶을 기적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매일 뜨는 해를 보면서도 감탄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남이 내게 베푸는 작은 친절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살아 있음이 감격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삶은 감격으로 채워질 것이다. 삶을 기적으로 여기며 살면 기적 같은 일들이 자꾸 일어날 것이다. 


삶을 곱씹다 보니 잔잔하게 행복감이 몰려온다. 이 모든 것이 응당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나 자신을 기적으로 여기게 해 준다. 고마운 일들 투성이, 감사할 일들 뿐이다. 내리는 눈에도 고마워할 줄 아는 영혼의 소유자가 되고 싶다. 순박한 영혼, 고마움을 간직한 영혼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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