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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Oct 28. 2023

임신 소동

그때부터였다. 임신 소동이 시작된 게. 아내의 전 직장 동료이자 나와도 잘 알고 지내는 누나 한 명이 전화를 걸어 왔다. 육지에서 생활할 때는 종종 만나기도 하고, 통화도 했으나 제주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많은 교류가 없었다. 7시쯤이나 되었을까, 아내와 나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 소리를 줄인 뒤 전화를 받았다.


“너희 별일 없나?”


수화기 너머로 카랑카랑하면서도 친근함이 묻어있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하는 통화였지만 목소리는 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소리도 크고 음도 높은 목소리, 어쩐지 나도 덩달아 음을 올리게 되는 목소리다. 대뜸 별일 없냐고 묻는 인사가 어쩐지 의아했다.


“그럼요 별일 없죠. 잘 지내시죠?”

“진짜 별일 없나?”


별 일이 있을게 뭐 있다는 말인가.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는 것인가 싶었다. 


“내 너거(너희) 태몽 꿨다.”


직장 그만두고 뭐 하고 지내는지와 같은 대화를 하게 될 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나는 별일 없냐는 질문으로 넌지시 2세 계획에 대해서 물은 것이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몇 달째 칩거 중인 나는 괜히 퇴사 이야기에만 꽂혀 있었다. 누나가 퇴사 사실을 알 리도 없는데 말이다. 깜짝 놀란 우리는 “네?” 하며 되물었다. 누나는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세 쌍둥이다.” 


아내와 나는 한 차례 쳐다볼 것도 없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생겨도 이상할 건 없지만 세 쌍둥이라니, 푸하하 웃어 보이고는 소식 있으면 바로 전하겠노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나는 최소 세 명은 낳자고 합의한 상태였다. 다만 내가 일을 그만두기도 했거니와  왠지 마음의 준비를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고 있지만 아빠가 되고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엄중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서 아이를 낳는 건 아니기는 하지만, 왠지 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차일피일 미뤄왔다.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와 비슷했다. ‘직장을 구해야 해서.’, ‘직장에 적응을 해야 해서.’, ‘돈을 어느 정도 모아야 해서.’ 같은 그런 이유. 아마 2세를 갖는 문제도 비슷한 이유로 계속 연기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일터를 마련하고 나서.’, ‘좀 더 안정적이게 된 후에.’ 같은 이유를 붙이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아이 없이 살 게 아니면 더 미룰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내와 며칠에 걸쳐서 대화를 나누었다. 전화 한 통이 대화의 물꼬를 터 주었고, 새로운 생각을 넣어준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는가 싶었다. 때로는 준비보다는 경험으로 배워야 하는 것들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멈춰서 숙고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냥 한 발 내디뎌야 할 때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새 가족을 맞이하는 일을 뭐 마음의 준비를 하고 돈을 모은다고 준비가 될 것인가. 이건 가 봐야 아는 길이다. 


그때부터였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마치 이미 임신 6개월쯤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 배가 좀 나온 것 같지 않아?”라는 질문을 며칠 동안 계속했다. 세 쌍둥이 이야기가 꽤나 머리에 남았는지 아내는 이미 세 쌍둥이가 뱃속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즐겨 마시던 커피를 갑자기 줄였고 배가 나와 몸이 무겁다며 “진짜 임신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아예 임신 가능성이 없진 않았지만 내 생각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난처했다. 배가 나왔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안 나왔다고 할 것인가? “으음….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가 내 입장에선 최선의 대처였다. 임신한 것처럼 배가 나왔다고 했다가 임신이 아니면 어쩔 것인가. ‘내가 그렇게 살쪘어?’라고 할 테고, ‘아닌데? 하나도 안 나왔는데?’라고 했는데 임신일 수도 있으니 나로서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몰랐다. 정답은 없어도 오답은 있는 법, ‘그거 살쪄서 나온 듯.’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라며 은근슬쩍 넘어가곤 했다. 임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꽤 확신하는 투로 아니라고도 해봤지만 아내는 오히려 ‘내가 임신하는 게 싫어?’라고 물어왔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이다. 아무튼 오답만 말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유튜브로 다섯 쌍둥이 영상을 연달아 몇 편을 찾아봤다. 다섯 쌍둥이를 어떻게 낳냐며, 감탄인지 기대인지 모를 말을 자꾸 했다. 다섯 명을 낳으면 한 명은 무조건 일을 그만둬야 한다든지, 그냥 쌍둥이는 네 배로 힘들다는데 다섯 쌍둥이는 얼마나 힘든가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 전화 이후로 아내는 이미 세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학교의 다른 선생님에게도, 가족에게도 온통 쌍둥이 이야기를 했다. 세 쌍둥이의 성별 조합은 딸, 딸, 아들이면 좋겠다며 내게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들 셋은 아니겠지.” 하다가, 나더러 또 아들이 좋겠냐 딸이 좋겠냐 물어왔다. 세 아이가 뱃속에 있는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나도 퍽 즐거웠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라온 우리가 어떻게 만나서 10년이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며, 또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따사롭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아내의 전 직장 동료의 전화 한 통에,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는 더없이 행복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한 줄인데?”


세 쌍둥이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테스트기 결과는 비임신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며칠이 더 지나서 또 테스트했지만 결과는 여전히 선명한 한 줄이었다. 세 쌍둥이가 없어지는 날이었다. 그 뒤로 예정일을 훨씬 넘기고 나서야, 아내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그 며칠 동안 우리는 세 아이의 부모였다. 다섯 쌍둥이 키우는 집을 보면서 마음의 준비도 하고, 이름도 나름대로 지어보고, 우리가 만들어 갈 가정에 대해서 함께 그려보기도 했다. 세 쌍둥이는 없었지만, 나와 아내는 부모가 될 준비를 조금 하게 된 듯도 하다. 


왠지 곧 아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흐뭇한 생각을 해본다. 아빠가 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어떤 준비를 더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곧 알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행복한 나날이다. 사랑을 이유로 서로 다른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허물을 덮어줄 수 있다는 것, 가정을 이루고 좋으나 싫으나 어려우나 함께 할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 신비롭게 여겨진다. 가족이 나누는 사랑이야 말로 세상의 다른 어떤 것도 채워주지 못하는 마음의 틈을 채워준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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