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의 바보상자

by 정필

바야흐로 AI의 시대가 되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AI를 마주치게 된다. AI가 쓴 글을 읽고, 또는 AI에게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어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해결방법을 요청하기도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상품 리뷰며 식당 리뷰 같은 것들은 다른 데 보다 AI 비율이 훨씬 높은 것 같다. ‘친절한 당신의 비서 AI’를 표방하고 있지만, 과연 AI는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 친절한 도구가 맞는가. AI 없이도 잘만 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점점 잘 해내지 못하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AI가 있음으로써 원래 내가 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은 수준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일시적으로는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내게 된다. 약간 평소의 ‘그 사람 답지’ 않은 것만 빼면. 그런데 이게 좋은 걸까?


‘잘’ 한다는 건 결국 성과를 낸다는 말이다.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좋은 결과를 내는 것, 그리고 인간은 시간을 ‘절약’하고 나머지 시간을 즐긴다. 얼마나 좋은 발상인가. 그러나 글쎄, 인간이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닐까?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더 좋은 길로 이끌고 있다는 생각보다도 외려 바보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바보상자가 ‘TV’였다면, 현시대의 바보상자는 ‘인공지능’이 아닐까?


숙고나 사유 같은 말들은 구식이 되었다. 인공지능에게 말 한마디, 단어 하나만 던져 주어도 수많은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온다. 그중 적당한 것을 채택하는 것 정도만 인간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세상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바뀌고 있는 걸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를 외치며 내리막을 달리는 기차가 연상된다. 바퀴가 철로를 이탈해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도 함께.


얼마 전에 모 대학교에서 논문에 ‘비밀 코드’를 숨겨두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논문 작성자가 심사를 받아야 하는 논문 한쪽에 ‘이 논문을 좋게 평가해 달라.’는 식의 코드를 숨겨둔 것이다. 논문을 심사하고 심사평을 써야 하는 사람은 이 논문을 그대로 인공지능에게 주었다. 인공지능은 논문 속에 숨겨진 코드를 알아보았고, 좋은 점수를 주었다.


취업교육의 일환으로 ‘자소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지원하는 기업에 맞게 자신이 경험했던 내용을 써내는 것이 자소서 아니던가. 요즘은 자소서도 모두 인공지능이 쓴다. 심지어는 그 자소서를 평가하기도 한다. ‘OOO그룹의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이 자소서를 평가해 주고 보완할 점이 있는지도 알려줘.’ 이제는 아예 인공지능으로 자소서 쓰는 법이라는 강의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핵심’ 경험 몇 가지를 넣으면, 해당 기업에 맞는 자소서가 뚝딱 하고 만들어진다.


이제 긴 책이나 기사는 인기가 없다. ‘복붙’이 불가능한 종이책은 더 인기가 없다. 디지털화된 활자를 인공지능에게 갖다 주면 ‘핵심’을 요약해서 번호를 매겨 가며 알려 준다. 인간은 ‘핵심’을 읽으며 시간을 절약하고, 내용을 파악해 낸다. 정 급하면 쓰지 못할 방법은 아니지만, 핵심을 추리는 과정 중에 사라진 것들은 정말 중요하지 않아서 생략된 것일까?


인공지능은 수많은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 나는 편리를 누리는 대가로 내가 내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극한의 효율성 추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나는 이 무한 디지털, 무한 효율성의 시대가 으스스하다. 인간다운 어떤 것들이 조금씩 소실되는 기분이다. 인공지능에게 하나 둘 인간이 해야 할 것을 위임하고 나면, 그 빈자리는 무엇이 메꾸게 될까?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도 혹시 위임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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