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일간 30,000km를 달리다

하루 평균 230km, 11시간을 달리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by Ataraxia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에 시작해서 첫눈으로

내린 폭설을 지나

12월 3일 계엄령이 떨어지던 그날도 나는 심야택시를 운전하는 기사였다.

12월 12일에 그만두겠다고 회사와 동료기사분들께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향했다.


50대 초에 본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자격증도 많이 따놓았지만

말 그대로 자격증은 자격증일 뿐이다.

가장 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업무는 물류센터인데,

여긴 도저히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운전은 자신 있고 좋아하는 편이라

월 400~500은 가져갈 수 있다는 대형승합택시

홍보기사를 보고 지원하여 면접도 보고 교육도 받아서일단 시작을 했다.


첫날의 긴장감과 실수는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앱과 단말기 조작을 잘못하여 장거리 손님의 택시비

5만 원을 못 받아 내 카드로 정산을 한 적도 있고

술이 취해 지갑이 없다며 집에서 가지고 나오겠다고 들어가 나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결국 못 받아 돌아선 적도 있고

만취해 잠이 들어 일어나지 않는 손님을 만나 곤욕을 치른 적도 있고

좋은 일이 있으신지 커피 값하라고 팁을 주시는

손님을 만난 적도 있고

차선변경까지 지시하며 길을 안내해 주는 친절한 손님도 만나봤고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다며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하는 손님,

2만 원밖에 없는데 이태원에서 구로까지 가줄 수 있냐고 묻는 손님,

초고급아파트에서 태운 유명 연예인까지


하루 평균 14~17회 정도 손님을 태우고, 하루 평균 230km를 달렸다.

10시간을 앉아있으니 엉덩이가 굳어가는 듯 아프고 다리는 저리다.

밤운전은 시력에 상당한 피로감을 준다. 거기에 여기저기 끼어드는 택시들과 대형 버스들까지

저녁 11시가 넘어가면 시청 앞에서 서울역도로는 심야버스들이 차선을 넘나들며 달린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클랙슨소리는 정말 스트레스다.

아! 이러다가 내 명에 못살겠다 싶은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정말이지 개인택시를 30년 했네, 40년 했네 하는 분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택시운전은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해야 한다.

자존심, 기분, 존재감.... 모든 걸 포기하는 경지에 올라야 한다.

들어도 안들은척, 봐도 못 본 척, 불쾌한 냄새가 나도 안 맡은 척....

일반택시보다 요금이 조금 비싼 대형승합택시이고

손님도 예약이나 콜 손님이 7~80%라 뉴스에 나오는 그런 진상고객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업무는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적응하니 점점 해볼 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급여가 생각했던 급여의 60% 정도이고 그것도 회사 사정이 안 좋다고 밀리기 일쑤였다.


거기에 점점 심야운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언제 들이받을지 모르는 차들이 사방에서 달려든다.

아! 이러다 길에서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을 하니 나머지 시간은 잠자기 바빴다.

다른 업무를 볼 시간과 상황이 안되니 생각이 많아지게 되었고

과감하게 그만두기로 결정을 하고 마음을 먹은 그날 과감하게 나왔다.

6개월이 조금 안 되는 시간 128일간 총 30,118km를 달렸다.

회사가 안정적이고 작더라도 급여가 제대로 나왔다면 조금 더 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정말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손님들을 만나고 겪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중년에 접어들어 인생공부 제대로 한 것 같다.

이제 그동안 망가진 몸을 추스르고 본업으로 돌아가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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