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늦은 아침을 먹고 종종 가는 해변 산책로가 있다. 바다를 향한 경사면이 꽤나 가팔라서 그저 산책이라고 했다간 동행인에게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는 코스이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지인을 데려왔던 지난번 산책이 그랬다. 바다 방향인 동쪽으로 시야가 트인 길이 많고, 산처럼 나무가 밀집되어 있진 않아서 햇빛이 무척 따갑다. 게다가 바다에서 반사된 오후의 강한 태양은 봄볕이라도 만만히 볼 수가 없어 썩 좋아하지 않는 선글라스까지 챙겨가야 한다.
걷다가 쉬어가기 딱 좋은 포인트에 전망 데크가 있고 그 주변에 드문드문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경사가 큰 계단식 지형이라 평지의 공원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벤치를 배치할 수가 없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비정형적이고 한눈에 읽을 수 없는 패턴의 산책로가 좋다.
주말엔 늘 만석이던 벤치 하나가 마침 비어 있어 다리를 펴고 앉았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청록의 바다가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다. 이 날의 하늘은 깨끗했고 파도도 거칠지 않았는데 유독 바람이 단단하고 세찼던 기억이 난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무방비의 벚꽃이 하염없이 떨어져 내렸다. 늦게 찾아온 봄에 피어난 꽃이 보드라운 땅 위에 눈물처럼 고였다 사라졌다. 여운이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꽤 길게 머물렀다.
사 월 십일의 정오. 봄이 지나는 한가운데에서 그 눈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