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호텔까지는 걸어갈만한 거리였다. 사실 더 멀었다 하더라도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았다. 군중 속에서 나를 분리시킬 짧은 고독의 시간이 필요했다. 눈앞으로 가물가물한 흰 반점들이 흩날렸다. 설마 눈인가 싶어 손을 앞으로 뻗었지만, 쌀알처럼 작은 진눈깨비는 나라는 존재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시야를 흐릴 뿐이었다. 차들의 꼬리에서 뻗어 나온 붉은 불빛이 테헤란로의 아스팔트 위로 차갑게 번졌다. 빌딩의 파사드를 통째로 뒤덮은 채 반짝이는 불빛은 익숙하지만 매번 날카롭게 눈을 아렸다. 나도 모르게 짧게 내뱉은 한숨은 시린 밤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호텔 방에 도착하니 아침에 동굴처럼 말아두고 나갔던 침대 시트가 칼같이 정리되어 있다. 외투와 목도리를 벗어던지자 뻣뻣하게 굳은 어깨 근육이 이완되면서 익숙한 통증이 밀려왔다. 걸어오는 동안 꽤나 떨었다 보다.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는 동안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코와 귀가 술주정뱅이의 그것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지표면은 끊어 오르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서울의 겨울은 나라는 작은 인간의 체온을 잘도 떨궜다. 방은 점유자가 부재한 낮 시간 내내 히터가 켜진 채로 공기청정기까지 가동되고 있었기에 눈을 떠 있기가 불편할 정도로 건조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대충 수건 하나를 물에 적셔 침대 헤드에 걸어두고는 죽은 듯이 잠들었다. 다음날 최대한 빠르게 서울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서울은 늘 낯설었다. 그 안에서 생활을 영위해 본 경험이 있어도 여전히 그렇다. 강남은 특히나 그렇다. 물리적인 밀도로나 자본의 밀도로나. 오랜 시간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그 욕망이 건축이라는 실체를 통해 누적된 공간은 또 다른 욕망을 자극하는 희소성을 가지게 된다. 나는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역, 특히 강남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스며드는 것이 오랜 시간 동안 거북했는데 그건 밀도에 대한 부적응의 결과였다. 욕망의 온도가 내게 맞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자 마른 나무 냄새가 코 끝을 파고들었다. 집을 오래 비울수록 그 냄새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일부러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선 창을 열어 신선한 바람으로 환기를 시켰다.
집에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