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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고무, 말랑한 판단

물이 새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까지

by Adyton

지난 주에 정말 황당한 일이 생겼다. 세면대 아래쪽에서 물이 새기에 확인해보니, 팝업 드레인 체결 부위의 플라스틱이 삭아 찢어져 있었다. 내가 도대체 뭘 했길래 배수관이 찢어질 정도였는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대청소할 때 세면대에 뜨거운 물을 부은 적은 있었지만, 횟수도 적고 화학물질도 아니었기에 결국 배수관 자체에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거실 세면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욕실을 들락날락하며쓰기 때문에, 주문한 팝업이 배송된 날 바로 설치해서 아래쪽 P트랩과 배수 연결관을 수리했다. 그런데 팝업 드레인을 교체하면서 배수 연결이 제대로 안 되었는지, 한 방울씩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서 다시 분리해야 했다. 꽉 조여둔 너트를 다시 풀어내려니 손목이 시큰거렸다. 일단 팝업 드레인과 연결된 P트랩을 분리한 후, 물을 틀어두고 연결 부위를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팝업 드레인과 배수관의 체결 상태가 문제였던 것 같다. 가스킷이 잘못 끼워졌거나 너트가 덜 조여졌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가스킷을 세면대 배수구 위치에 최대한 맞춰두고, 너트를 온 힘을 다해 돌렸다.


첫 번째 성공.

너는 정품이 아니라 불량품이다.


다음 문제는 침실 욕실이었다. 거실과 같은 팝업을 썼기에, 불량일 가능성이 있겠다 싶어 미리 교체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쪽은 아무리 가스킷을 배수구에 맞춰 꽉 조여도 어디선가 물이 샜다. 너트는 플라스틱 소재였지만, 깨지거나 금이 간 곳은 없었다. 가스킷의 형태가 배수구에 잘 맞지 않거나, 너트가 어긋났을 가능성도 떠올랐다. 고무 가스킷은 배수구와 팝업 드레인 사이를 밀착시키는 부품으로, 말랑한 재질일수록 밀착력이 좋다. 하지만 새로 배송받은 제품의 가스킷은 약간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실리콘이나 고무 부품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경화되니까, 오래된 재고였던 걸지도 모른다. 기존 팝업 드레인을 확인해보니, 가스킷이 훨씬 말랑했고 상태도 양호했다. 다만 그 제품은 가스킷이 팝업에 결합된 형태라,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분리해야 했다. 운 좋게도 잘 떼어낼 수 있었고, 그걸 새 드레인에 조립한 뒤 다시 너트를 조여봤다.


두 번째 성공.


대체로 새 부품이 문제를 해결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만, 가끔은 그게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왜 새 것인데도 물이 샐까?’라는 의문에서, ‘혹시 가스킷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고, 내 손으로 확인하고,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직접 실험해본 결과 해결할 수 있었다.


집을 돌보는 일에는 분명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도 있지만, 스스로 시도해볼 수 있는 문제들도 꽤 있다. 이런 잡다한 시도들은 단순한 고장 수리가 아니라, 생활 속의 작은 사고 실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번 일도 그랬다. 새는 물을 멈추기 위한 수리는 잠깐이었지만, 그 원인을 찾고 판단을 바꾸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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