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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조금은 느린

by Adyton

가끔 나는 충동적으로 물건을 샀다. 필요해서라기보다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혹은 광고가 은근히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추천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평소엔 없던 갈망이 불쑥 싹텄고, 나답지 않은 소비는 조용한 일상을 흔들었다.


그렇게 산 물건들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박스를 뜯는 순간 설렘이 있었다. 새 냄새, 반짝이는 표면, 손끝에 전해지는 신선함. 그러나 그 기쁨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특별한 감정은 빠르게 사라지고, 물건은 다른 소지품 속에 묻혔다. 이내 또 다른 광고와 자극이 덮쳐왔고, 나는 다시 새로운 갈망에 흔들렸다. 만족은 짧았고, 공허는 길었다.


돌아보면, 가계부 그래프가 평소답지 않게 치솟던 시기엔 내 자존감도 함께 낮아져 있었다. 현실의 나와 원하는 나 사이의 틈을 물질로 메우려 했던 게 아닐까. 노력이나 성취 없이 얻은 보상은 잠시 허전함을 가려줄 수는 있지만, 곧 다시 공허가 찾아온다. 그 뒤를 메우려 더 많은 소비가 따라온다. 물질은 결코 내면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비를 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일어나는 충동구매는 분명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나는 이런 보상 심리를 막기 위해 광고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광고는 끊임없이 결핍을 속삭인다. 지금의 당신은 부족하니, 이 물건이 필요하다고 부드럽고 달콤하게 말한다. 나는 그 속삭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디어 사용 습관을 바꿨다. TV는 원래 보지 않았고, 다른 미디어도 될 수 있으면 광고 없는 방식으로 이용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공간은 끊임없는 비교의 장이었기에 필요한 순간에만 들어가 정보를 얻고 곧 나왔다. 남의 소비와 나의 현실을 나란히 놓고 보는 순간, 무언가에 대한 ‘좋아보임’에 평소의 나라면 떠올리지 않았을 욕망이 피어오른다. 광고라는 시청각적 공해에서 멀어지자 마음이 놀라울 만큼 고요해졌다. 타인의 삶과 내 삶을 비교할 기준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꼈다.


소비를 줄이자 오히려 일상이 가벼워졌다. 꼭 필요한 물건을 고를 때는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수많은 리뷰를 뒤지는 대신 내 생활에 이 물건이 정말 들어올 자리가 있는지를 생각했다. 내가 가진 물건의 쓰임과 총량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오래 고민해 고른 물건은 집에 도착했을 때 다른 기쁨을 주었다. 택배 상자를 뜯는 순간,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기다림과 확신이 함께 도착한 듯했다. 그 기쁨은 충동 소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갔다.


한국 사회에는 작은 소비조차 실패하지 않으려는 강박이 있다. 몇 천 원을 아끼려 결정을 미루고, 더 싸게 사기 위해 시간을 쓰며, 소비 실패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평온이다. 나는 조금 비싸게 샀더라도 덜 지치고, 빨리 손에 넣어 쓸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소비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물건이 내게 남긴 효용과 만족이다.


이후 나는 ‘느린 소비’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덜 사고, 오래 쓰고, 천천히 고르는 방식이다. 미니멀리즘이 숫자를 줄이는 데 집중한다면, 느린 소비는 물건과의 관계를 다시 짓는 일에 가깝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조차 소비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망설임이 물건에 무게와 의미를 더해준다. 그렇게 들어온 물건은 기능을 넘어 나의 일상 속에서 오래 함께한다.


소비로 나를 꾸미지 않는다. 비교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광고가 더는 귓가에 속삭이지 못하고, 남의 소비가 내 눈을 흔들지도 않는다. 때때로 물질로 부족함을 덮으려 했지만, 이제는 결핍마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때로는 적당한 결핍이 우연한 발견과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소비는 더 이상 공허를 메우는 수단이 아니라, 생활을 천천히 다져가는 선택이 되었다.


적게 살수록 선택은 선명해지고, 오래 기다린 물건은 더 소중해진다. 그 과정에서 절약뿐만 아니라 일상의 평온을 얻었다. 소비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 의미는 달라졌다. 이제 소비는 나를 흔드는 힘이 아니라, 나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미지: William Hogarth – A Rake’s Progress (탕아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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