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그 후

by Adyton

요즘은 아무리 새로운 공간에 가도 감흥이 오래 남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집도, 잘 꾸며진 호텔도, 누군가의 멋진 에어비앤비도 잠깐은 흥미롭지만 금방 흐려진다. 예쁘다는 감정은 분명 드는데, 그 감정이 오래 붙잡히지는 않는다. 처음엔 내가 좀 무뎌졌나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새로운 것에 설레지 않는 단계에 온 걸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뎌진 게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은 공간을 통과해버린 상태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집 밖에서 하루 종일 결정을 한다. 이게 맞는지, 저건 예외가 아닌지, 이 흐름은 어디서 깨지는지. 제품 정책을 보고, 흐름을 보고, 정합성을 맞추느라 머릿속에서 계속 디버깅을 한다.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꽤 비슷하다. 그래서 집에 오면 정말 아무 판단도 하고 싶지 않다. 이걸 여기 둘까 말까, 저걸 꺼낼까 말까 같은 사소한 선택조차 피곤하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만큼은 생각이 자동으로 꺼졌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 마음으로 하나씩 쌓다 보니, 어느새 집 안에 나에게는 보이는 투명한 구조가 생겼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물건들이고 가구들이지만, 사실은 이미 한 번 다 끝낸 판단들만 남아 있는 상태다. 내 집에는 OS가 있다. 그리고 그 OS와 호환되지 않는 용도와 물성을 가진 사물은 애초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여놓고 나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안 맞을 걸 아니까 아예 시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집 안에서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 써야 할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인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이게 취향이었을까, 아니면 이렇게 살지 않으면 계속 불편했을까. 아마 둘 다 아닐 것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취향을 충분히 실험해 보고 나서야 결국 남은 것만 남긴 결과에 가까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노골적인 의도나 연출이 앞서는 공간이 유독 피곤하다. 의미 없이 나열된 것들, 분위기를 연기하는 조명,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이 붙어 있는 공간들. 그런 곳에 있으면 쉬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판단을 하게 된다. 반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는 편안하다. 잘 꾸며서가 아니라 덜 말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기보다 그냥 굴러가게 둔 상태라서 그렇다.


이제는 안다. 내가 만든 집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지 않으면 바깥 세계를 상대로 계속 디버깅하게 된다는 걸. 그래서 이 집은 내가 가장 편안해지기 위해 남겨둔 최소한의 구조이고, 취향의 결과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까운 형태다. 아마 그래서 아무리 멋진 공간에 가도 “좋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만, “편하다”는 말은 잘 나오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이미 집에서 충분히 편안하기 때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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