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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쟁이 Oct 30. 2023

하늘 위 세상, 베트남 판시판산

사파여행 2일 차, 내가 이곳에 오르다니!

해발 3,143m. 우리나라 관악산이 약 630m 정도이니, 5배 정도가 높은 거다.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는 별명을 가진, 베트남의 가장 높은 산에 올랐다.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니 숨이 턱 막혔다. '압도된다'라는 말을 온 몸으로 느꼈다.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위대함이 뒤엉켜, 경이로움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 판시판산은 그런 곳이더라.



사파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예매시스템이나 시설관리가 매우 잘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내 썬플라자 건물에서 푸니큘라(모노레일)를 타고 무옹호아 역까지 간다. 그 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판시판 역까지 간 후, 다시 한번 푸니큘라를 타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시내의 날씨는 너무 좋았는데, 정상의 날씨는 또 전혀 다를 수 있다는 후기를 미리 접했던터라, 첫 번째 푸니큘라를 타기 전에 직원 분께 판시판산 정상의 날씨는 어떤지 물었다. 그녀의 친절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변은 우리의 기분과 같았다. "Very Nice!"


초록초록한 사파 속 빨간 푸니큘라는 꽤 예뻤다.

무옹호아 역에서부터는 케이블카를 타고 15분 정도를 오른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 스키장의 곤돌라나 리프트도 꽤 무서워하는 편인데, (내 눈엔) 가냘픈 줄 하나에 높이 매달려서,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오른다는 게 공포스럽다. 특히, 주기적으로 있는 줄과 줄 사이의 도르래(?)같은 구간을 지날 때 '쿠구구궁'하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지면 나도 모르게 바짝 경직되고 만다. 기본적으로 줄에 매달려 가는 이동 장치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나에게 해발 3,000m를 향하는 케이블카를, 무려 15분 동안이나 타는 건 나름 큰 도전이었다. 힐끔힐끔 내려다 본 사파의 땅은 너무 까마득하게 멀었지만 확실히 특색있었다. 각 칸마다 조금씩 채도가 다른 색감의 계단식 논과 빨갛고 푸른 지붕의 낮은 집들. 점점 더 고도가 높아지며 더 넓은 사파가 한 눈에 들어왔지만, 눈을 감아버렸다. 빨리 도착하기만을 기도하며, 남아 있는 '쿠구구궁'은 없기를 바라며.


까마득한 높이의 산과 산 사이를 넘어다니는 케이블카. 다가오고 있는 공포의 '쿠구구궁' 구간..!

살면서 가본 곳 중에 가장 높은 곳. 드디어 판시판산 정상에 도착했다. 워낙 고도가 높은 탓에 거의 구름이 가득 껴서는 한치 앞도 안보이는 날이 많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맑은 날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과연, 우리 집안은 덕을 쌓았을까?


나도 열심히 덕을 쌓아야겠다. 아주 나중에, 내 아이들과 함께 다시 이 광경을 보러 오려면.
왼쪽 사진의 좌하단, 우리가 탄 케이블카가 보인다. 최소 15인승 케이블카를 저렇게 작고 소중하게 만들어버리는 사원의 스케일.

바람이 많이 불었고, 해는 뜨거웠다. 눈 앞에서 빠른 속도로 자꾸 나를 휘감았다가 스치듯 사라지는 건, 안개나 연기 따위가 아니라 구름이었다. 늘 올려다 보던 구름을 내려다보니, 하늘이 아니라 바다같았다. 약 800년 전 베트남 '쩐 왕조' 시절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사원들과 11층 석탑, 31m에 달하는 대형 불상이 그 곳의 웅장함과 묘한 신비로움을 더한다. 이 높은 곳까지 저 정교한 건축양식의 건축물들을 지어내고야만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묘한 신비로움의 근원이었다.


1시간 정도, 그 곳에 있는 불상과 사원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걷다 보면 지나가는 구름에 덮쳐질 때가 있었는데, 드라마틱하게 시야가 바뀐다.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구름의 촉감은 푹신푹신하기보다 서늘했고, 구름 속은 뿌옇고 한치 앞도 안 보여서 음산했다. 사실 난 늘 구름을 그릴 땐 퐁실퐁실한 모양으로, 가끔은 웃는 표정도 그려넣었다. 평소에도 가끔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걸 보면 좋은 기분이 피어올랐었는데, 구름 속에 직접 들어와보니 알겠다. 구름이 귀엽고 기분 좋은 존재가 되려면, 그들이 흐르는 속도가 더디게 보일만큼 멀찍이 떨어져서 파란 배경과 함께 봐야만 한다!


구름 속에 갇힌 뷰!

판시판산 정상은 한 여름에도 얇은 겉옷이 필요한 날씨지만, 두피 화상을 입을 정도로 자외선이 강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정수리 쪽 두피가 다 벗겨지는 바람에 고생을 좀 했다. 모자 필수!) 나도 얇은 겉옷을 챙기긴 했는데, 바람이 강하긴 했지만 많이 춥진 않아서 왼쪽 팔에 걸친 채로 돌아다녔다. 이게 화근이었을까? 아니, 다행이었던거지, 왼쪽 팔이라도 살았으니. 판시판산 정상의 강한 자외선에, 멋모르고 내놓고 다닌 오른쪽 팔이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내려오면서부터 슬슬 쓰리기 시작하더니, 시내에 돌아와서는 약간의 햇빛도 아예 못 쬘 지경이었다. 마치 살짝만 햇빛에 닿아도 파스스 타버리는 드라큘라가 된 것 같았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사파 시내에 문 연 약국을 찾기 시작했다. 두세군데를 허탕치고 나서야 영업 중인 약국을 찾을 수 있었다. 바닥에 누워계시다 우리의 기척에 어기적어기적 일어나신 베트남 약사님 앞에서, 영어도 베트남어도 잘 못하는 나는 힘껏 눈썹 앞머리를 누르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빨갛게 익은 오른팔을 쳐들며 외쳤지. "My skin is burning!!!!"


그래도 이런 완벽한 하늘의 판시판산이라면, 양팔이 다 타버린대도 다시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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