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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쟁이 Oct 30. 2023

베트남의 스위스, 사파에 다녀오다.

사파여행 1일 차, 내가 이곳에 와 있다니!

서울 사당에서 베트남 사파까지, 13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 웅장한 자연과 화려한 거리, 그 안에서의 평범한 일상들이 어우러져 묘하게 안정감을 주는 도시, 베트남의 스위스라 불리는 '사파(SAPA)'는 내 여행지 위시리스트 중 한 곳이었다.



하노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신경이 곤두섰다. 공항에서 사파로 가는 슬리핑 버스(*누울 수 있는 침대 좌석이 마련된 2층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여행 전 찾아봤던 블로그 후기에 따르면, 공항에서 픽업 봉고차를 타고 슬리핑 버스 사무실로 가야한다고 했다. 근데 사무실에 전화를 해야 픽업을 온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해진 시간 없이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정보가 불분명했던 지라... 우선 공항 도착과 동시에 불안한 마음과 함께 수화물을 거의 낚아채듯 찾고선, 픽업 포인트였던 1층 17번 기둥으로 달렸다.


공항 밖으로 나서자마자, 온몸에 습도 한 겹이 쌓였다. 말로만 듣던 베트남의 여름 더위에 숨구멍이 좁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건 슬리핑버스 업체 로고가 박힌 빨간 카라티의 직원. 

"Hello!" 마치 지인이라도 만난 양, 반갑게 달려가니 리스트에 적힌 이름들을 보여준다. 그 리스트 속 내 이름을 가리키자 17번 기둥 밑에 정차되어 있는 회색 스타렉스로 안내했다. 후덥지근한 차 안에는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다섯 분의 한국인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앉아계셨다. 그 먼 도시까지, 가이드 없이 자유여행으로 왔다는 말씀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그제서야 실감했다. "우리도 드디어, 베트남 여행을 왔구나!"


정신 차려보니 봉고차에 타있었다. 아쉬운 대로 뒤쪽으로 멀어지는 공항을 찍어봤다.


오후 3시 30분, 무사히 사파에 가는 슬리핑 버스에 탑승했고 생각보다 쾌적하고 나름 프라이빗한 개인 공간에 만족했지만, 거의 1분에 한번씩 울리는 클락션 소리와 좁고 굽은 산길에서의 아찔한 추월, 급브레이크와 거침없는 핸들링은 나를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서울에서도 난폭한 택시나 버스를 자주 타지만, 이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찌나 무섭고 긴장되던지! 슬리핑버스에서 슬리핑은 커녕, 무사히 도착만 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5시간 가량을 달렸고, 드디어 도착했다. 오는 길 내내 사방이 캄캄했던 오후 9시, 의외로 화려하게 빛나던 사파에.


메인 광장 썬플라자 건물. 사실 서울에 더 화려하고 번듯한 건물은 많지만 갓 도착한 여행자 마음을 설레게 하기엔 충분했다.


슬리핑 버스 직원의 호텔 드롭 서비스를 받아, 우선 체크인부터 했다. 우리가 선택한 호텔은 사파 피스타치오 호텔. 시내와 근접한 위치도 좋고 청결과 인테리어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루프탑 수영장과 실내 수영장이 모두 있어, 수영을 실컷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어서와, 베트남은 처음이지?'라고 말하는 듯한, 꽤나 베트남스러운 객실 인테리어를 보는 순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여행에 대한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짐을 대충 던져놓고는 사파에서의 첫 끼니를 먹으러 시내로 나왔다.


"어서와, 베트남은 처음이지?"
이 말도 안되는 루프탑 수영장 때문에 이 호텔을 찾는 분들이 많으시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



미리 구글맵을 통해 봐 두었던 파란색의 외관과 유럽풍 인테리어가 예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훈제연어스테이크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 누들을 시켰고, 무사히 도착한 우리를 기념하는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무슨 맥주였는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설렘으로 가득 찬 맛이었던 건 확실하다. 사실 난 평소에도 맥주를 좋아하고 즐기는 편인데, 나에게 맥주의 맛이란 홉이나 향, 맥아의 비율 따위가 아닌 것 같다. 맥주를 마시는 순간의 감정 같은 것들이 맥주의 맛으로 남는다. 예를 들면 하루를 마쳤다는 안도감이나 무탈한 일상의 평온함, 속상한 마음을 덮어버리는 담담함 같은 것? 내가 맥주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확실히 극F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현지 물가에 비해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이었던 레스토랑. 그렇지만 인테리어나 맛, 서비스 모두 훌륭!
이 베트남 산골마을 가게 간판에 한국어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한국어로 쓰여있는 베트남 사파의 인도레스토랑.


중국에 가까운 베트남의 고산도시, 몇 년 전 <신서유기>라는 프로그램 촬영지로 처음 알게 된 이후에 언젠간 꼭 가봐야지 싶었던 곳인데 이동시간도 길고 해외여행을 다닐 여유도 못되었던 지라,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곳이었다. 그 사파에, 내가 이렇게 와 있다니. 심지어 나에겐 막연하던 이곳에도 당연한 듯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나에게 사당이라는 터전이 있듯, 사파가 터전인 이들일 뿐인데.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이 왜 그렇게도 놀랍고 신기한 건지. 


신서유기4 에서도 언급되었던 '안개의 도시'


사파는 안개의 도시다. 고산지대라 날씨가 시시각각 바뀌는 것은 물론,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 많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날씨 탓에 관광을 포기했다는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날씨의 기복이 굉장히 큰 지역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하늘의 허락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곳. 이 곳에 있는 4일 중 하루만, 아니 한두 시간 정도만이라도 하늘이 허락해주길! 그래서 사파의 선명한 풍경을 직접 눈에 담아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겸손함과 간절함을 품고, 여행 2일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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