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애착 극복기

나는 소시오패스일까?

by 산을 걷다

오늘 엄마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계셨다.


나는 물었다.

"감기걸린 사람이 술을 마셔?"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안좋은 일이 있어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별것도 아니라며 엄마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거실에서 앉아서 밥을 먹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오늘 있던 일을 얘기해주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만 빼놓고 선물을 돌렸다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가 그 사람한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감정은 상할 수 있지, 사람은 원래 다 그렇잖아. 그리고 그 사람이 좀 섬세하지 못하네 티라도 안나게 하던가."


엄마는 공감 받았다는 생각에 굉장히 기뻐했고, 방긋웃으며 금새 기분이 좋아지셨다. 그리고 아들 덕분에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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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아주 일상적이고 별 것 아닌 대화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쉬운 공감과 위로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과거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엄마도 그 사람한테 해준 거 없다며 그런걸로 끙끙대면 엄마만 손해야"


부정적인 감정이 두려운 회피형애착.

이건 나의 극복기를 담은 이야기다.


나는 요즘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슬퍼서? 힘들어서? 아니다. 내 눈물은 정확히 '애도의 눈물'이다.


내겐 회피형애착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다.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10년지기 절친의 오열을 들으면서도 나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분명 지금 오열하고, 슬퍼하며 일상생활이 힘들어야 하는데.. 내 감정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혹시 소시오패스는 아닐까하는 생각에 나는 스스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내 감정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지, 정말 소시오패스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글을쓰며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 느낀 감상은 '무지'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나에 대해 써보려고 하니 펜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부터 시작해봤지만 몇줄도 쓰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흥미로웠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 나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니,

마치 좋아하는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나를 탐험했다.


몇 개월간 계속해서 글을 썼다.

어떨 때 기쁜지, 언제 슬픈지, 흔히 말하는 발작버튼은 무엇인지


그러다보니 우연히 내 트라우마를 건드리게 됐다.

아주 강하게 은폐된 내 무의식에 숨겨진 그 감정. 이 친구를 찾는데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내 어린시절

나는 내 어린시절을 이렇게 표현한다.

울면 더 힘들어지는 환경


흔한 얘기다.

부모님이 빚을 내 시작한 사업의 실패, 매일 일어나는 부부싸움, 이혼에 관련 된 얘기들, 번복되는 가족의 자살기도. 가정에서 매일 마주하는 부정적인 감정 것들. 가난, 좌절, 분노, 덧없음


하지만 어린 나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집안에서 행복하지 못한만큼 밖에서 즐거웠다.

외부에서 의미를 찾았다. 공부를 열심히해 좋은 성적을 받고,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다.


나는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날 좋아해줬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왜 나는 가족의 죽음에 조금도 슬프지 않았을까? 왜 가장 친한 친구가 오열할 때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었을까?


그 이유의 파편을 내 가정환경에서 찾게됐다.

처음엔 울었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더 큰 고통뿐이었다.


항상 긴장속에 살았다. 그리고 엄청나게 빠른 눈치를 얻었다.

매일 같이 분노하는 아버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타인의 감정을 아주 민감하게 캐치할 수 있게 됐다. 매일 같이 무너지는 어머니의 오열에도 나를 지키기 위한 강철 같은 멘탈을 얻었다. 점점 부모님이 울어도 나는 울지 않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생각은 항상 사전에 불행을 가정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오기 전에 나는 사전에 차단을 하고 만다.

"부모님이 이혼하면 어디로 갈까?", "부모님이 모두 사라지면 어린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차분히 내 어린시절을 적다보니 이해가 갔다. 내가 타인의 감정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알아차리면서도 왜 공감하고 위로하고 싶지 않은지. 왜 지금 내 앞의 사람이 원하는 정답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마는지.


나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과거의 그 아이를 안아주는 중이다.

이젠 울어도 된다고, 강한척 할 필요 없다고, 넌 지금 안전하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때면 매일같이 운다. 마치 감정의 댐이 무너진 것처럼, 그 동안 쌓여있던 수많은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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