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앞두고 엄마가 물었다. "가고 싶니?"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아니야, 안 가고 싶어."
사실 가고 싶었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사진도 찍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에 보게 될 엄마의 표정이 선명했다. 우리는 가난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원하는 걸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일찍부터 그런 걸 알아버렸다.
"너는 우리 반 분위기 메이커야. 네가 없으면 반이 너무 조용할 것 같아. 선생님은 네가 갔으면 좋겠어."
지금 생각하면, 정말 따뜻하고 사려 깊은 말.
선생님은 어른이었고,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다가오려 애쓴 사람이었다.
나는 저 말을 들었을 때, 선생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의 배려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나는 조숙했다. 동시에, 그 배려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가의 배려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나를 더 작게 느끼게 했다.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감각이, 나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강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런 말은 곧 약하다는 증표처럼 느껴졌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또 하나의 방어막을 올렸다. 그날, 선생님의 말은 나를 구할 한마디였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나도 처음엔 울었다. 우리 집이 평범하지 않다는 게 서러워서 울었고, 다투는 소리가 무서워서 울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무너짐을 반복해서 겪으며, 나는 울지 않는 쪽을 택했다. 어른들은 울음을 숨기려 했지만,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울고 난 흔적, 침묵, 붉어진 눈. 그런 장면들을 자주 봤다.
한 번은, 가게에서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만취한 상태였다. 구토를 했고, 말은 흐려졌고, 나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엄마는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냥 구토를 닦았다. 아빠가 그걸 보지 않도록,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했다.
가게 화장실에서였다. 실크 같은 천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걸 내 손으로 풀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치웠다. 그때도 울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엄마는 정말 그걸 사용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던 걸까.
나는 울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 조용히 천을 풀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하루를 정리했다. 그렇게, 나는 감정을 지우는 법을 완성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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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감정을 지운 채, 사람들과 웃으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그 방식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 앞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