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돼, 나약해도 돼, 그게 더 강한 거야.
감정을 숨겨야 했던 집
어린 시절 나는 감정을 마음속 깊이 눌러 담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의 싸움은 일상이었고, 아버지의 폭력은 예고 없이 번번이 찾아왔다. 극단적인 시도들이 일상처럼 반복되었고, 어머니는 자주 “너 때문에 산다”는 말을 했다. 어린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졌다. 울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집 안에서는 누구도 서로의 상처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 속에서 나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방법만을 배웠다.
위험한 감정, 얼어붙은 마음
집안의 공기는 늘 불안하게 흘렀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여겼다. 혹시라도 내가 울거나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이면, 그 불안이 현실이 될까봐 두려웠다. 화가 난 아빠나 울고 있는 엄마를 더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나는 조용히 표정을 지웠다. 감정은 언제나 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불안 요소였고, 그래서 나는 감정을 지우는 법을 먼저 배운 아이가 되었다.
밝은 아이의 이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늘 잘 웃는 아이였다. 성격도 긍정적인 편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나를 밝고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나 자신도 내가 감정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낯선 사람과도 쉽게 친해졌다. 누군가 힘들다고 말하면 도와주려 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좋아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상했다.
왜 가끔은 사람들이 내게 “넌 너무 차갑다”고 말했는지.
왜 연인과의 감정 싸움에서는 항상 무기력하게 느껴졌는지.
왜 누군가가 펑펑 우는 순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는지.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 안에 감정의 방 하나가 비어 있었다.
감정 회피의 벽을 마주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말했다. “넌 정말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그 말에 화가 나기보단, 이상하게도 머리가 띵했다. 나는 진심으로 놀랐고, 그게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돌아보니, 나는 오랫동안 기쁨에도 슬픔에도 무덤덤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혼자 견디는 법을 먼저 찾았고, 정작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모를 때도 많았다.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일까? 아니면 너무 오래 눌러왔기에 감정을 꺼내는 방법을 잊어버린 걸까? 그 질문은 내 안의 문 하나를 열었다.
되찾은 감정
나는 감정을 회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 내담자가 되었고, 스스로 치료자가 되었다.
거울을 마주 보며 감정을 읽는 연습을 하고,
일기를 쓰며 무뎌진 감정을 말로 옮기기 시작했다.
감정을 해체하고, 풀어내고, 다시 느끼는 법을 배워갔다.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보며, 나는 확신했다.
나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꺼내는 게 두려웠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약함'은 내겐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슬플 때 울 수 있고, 기쁠 때 마음껏 웃는다.
타인의 나약함을 봐도 밀어내지 않고, “아,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을 열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예전의 나처럼,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무언가 비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젠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감정을 잃어야만 했던 아이였다.
살아남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감정을 감췄다.
하지만 지금 나는, 감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쓰는 지금,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때 그 아이가 울지 못했던 만큼,
지금의 나는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울림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울어도 돼, 나약해도 돼, 그게 더 강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