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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조이 Feb 01. 2023

스노우보드로 배우는 인생





2009년 겨울,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났던 그때.

그 당시 남편의 유일한 취미였던 스노우보드를 함께 타고 싶은 마음에 "나도 타고 싶어! 가르쳐 줘!" 하고서 남편을 따라 스키장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스키장, 그리고 처음 타보는 스노우보드.

새로운 세상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에 잔뜩 신이 났고, 금세 스노우보드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이십 대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겁이 없었기에 수없이 넘어지고 멍이 들고, 심지어 패트롤에 실려 내려가 보기도 하면서도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남편과 함께 스노우보드를 즐겼다.

새하얀 눈 위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쉭쉭 보드를 타고 내려올 때의 그 짜릿함이란, 겨울을 온몸으로 느끼는 기분이랄까.


결혼을 하고 5개월 만에 첫째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줄줄이 연년생으로 둘째가 또 태어났다. 겨울이 올 때마다 스노우보드 생각이 났지만 아이들을 두고 타러 갈 수도 없고,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창고에서 몇 년간 먼지만 쌓인 채 덩그러니 방치되고 있는 보드 장비들을 볼 때마다 '이제 못 탈 것 같으니 그냥 팔아버릴까?'라는 마음과 '아이들이 좀만 더 크면 같이 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내 안에서 부딪히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2020년 1월,

지금으로부터 딱 3년 전 겨울이었다.

첫째가 만으로 7세, 둘째가 만으로 6세가 되던 해.


"다섯 살 아이도 보드를 타던데, 우리 애들도 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남편에게 한번 가르쳐보는 건 어때? 하고 물었다. 남편도 아이들과 함께 스노우보드를 타는 로망이 있긴 했지만, 막상 이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려니 막막했던 모양이었는지, "가능할지 생각 좀 해보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때 마침, 제주도에 사는 친한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애들 스키나 보드 강습시키고 싶은데, 같이 하자!" 어렸을 때부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같이 자주 놀러 다녔던지라 왠지 같이하면 애들도 서로 의지하면서 잘 할 것 같은 마음에 흔쾌히 오케이!를 하고 강습을 알아보는데, 계산해 보니 강습비가 1인당 백만 원 정도 드는 게 아닌가. 아, 이 돈이면 차라리 직접 가르쳐주고 더 자주 스키장을 가는 게 낫겠다 생각이 들어서 친구와 함께 남편을 꼬시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의 꼬임에 넘어간 남편이 애들 넷을 가르치기로 결심을 했다.





만 7세가 되던 첫째들





만 6세가 되던 우리 둘째와 만 5세가 되던 친구네 둘째.



이렇게 넷은 엄마들의 열정으로 스노우보드의 세계로 입문을 했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열흘 동안 우리 집에서 합숙을 하면서 쪼꼬미들을 이끌고 스키장을 들락날락했던 그 겨울.



우리는 참 용감했지, 그때 ㅎㅎ




졸지에 강습 선생님이 되어버린 남편은 애들 넷을 가르치느라 한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렸다. 남편뿐만이 아니라 우리들도 한 명씩 붙잡고 케어하느라 정작 우리는 스노우보드를 즐길 수도 없었다.

균형을 못 잡고 매번 넘어지는 아이들에게 "다시!", "일어나!", "잘 하고 있어!"라는 말로 다독이고,

넘어져서 울고, 마음대로 안돼서 우는 아이들에게 "원래 백번 넘게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엄마도 그랬어!" 하며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 같아서 가르쳐주는 대로 빨아들였다.




첫째들은 낙엽으로 내려오는 걸 금세 익히고는 둘이서 줄줄이 따라서 타고 내려오고, 우리 둘째도 막판에 낙엽까지 성공! 제일 어린 막내는 낙엽까진 성공을 못해지만 스노우보드가 어떤 것인지는 충분히 알게 되었다.



"너희들, 안 무섭니?"

"응 하나도 안 무서워. 너무너무 재밌어!"




그러고 나서 올해, 2023년 1월,


코로나로 몇년을 스키장에 못 가다가 이제는 가도 되겠다 싶어 다시 함께 했다. 둘째들은 첫째들이 입었던 스키복을 물려 입고, 첫째들은 새로 구입! (내년에 또 물려줘야지) 헬멧과 장갑은 다 작아져 버려 다시 하나씩 구입하고, 그새 발도 부쩍 커버려 이제는 제법 어린이 티가 났다.




첫째들은 한번 타더니 바로 예전처럼 타기 시작했는데, 3년 전 기억이 가물가물한 둘째들은 아빠들에게 다시 개인 강습을 받았다. 3년 전에는 일 때문에 바빠 함께하지 못했던 친구 남편이 올해는 함께해서, 아빠가 둘이라 훨씬 수월했다.


성격이 조금 급한 친구네 둘째는 3년 전에는 빨리 타고는 싶고 몸은 안 따라줘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그땐 어리기도 했지만) 이번엔 차근차근 배우니 금세 이해를 하고 형 누나보다 더 멋진 포즈로 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아이들 모두가 스스로 잘 타기 시작하니, 함께 보드 타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졌다.




형아만 졸졸 따라다니는 막내, 

언니가 너무 좋은 우리 둘째.




이번에도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안 무섭니?"

"엄마, 하나도 안 무서워~ 엄마는 무서워?"

"응, 엄마는 조금 무서운데 ㅎㅎ"


줄줄이 줄지어 보드를 타면서 한명이 넘어지면 일어설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같이 출발하고, 넘어지면 하나같이 "괜찮아?"를 외치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아이들.

언제 이렇게 컸니?



보드를 타며 아이들은 인생을 배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 서두르지 않고 한 단계씩 배워나가는 법, 힘들지만 참고 견뎠을 때 오는 희열감, 계절을 계절답게 즐기는 법, 그리고 함께하는 법을.




나이가 들었는지, 살이 쪄서 그런 건지, 한번 넘어지고 나면 일어나는 것도 어렵다. 넘어지기 싫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를 못한다. 넘어지면 아프니까, 다치니까, 이젠 넘어지는 것도 두려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턴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머뭇거리고 있으면 분명 넘어지기 마련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 단계 성장하는 법. 아이들처럼 두려움이 없어야 잘 탈 수 있는 거겠지. 나도 분명 젊었을 땐 겁이 없었는데...


넘어짐이 반복되지만 계속해서 일어나고, 일단 일어나기만 하면 어느새 끝까지 내려와 있다. 힘든데 한번 쉴까? 하다가도 일단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 어떻게든 또 내려오게 된다. 보드를 타면서 다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타는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참아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해냈다는 뿌듯함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나 역시 보드를 타면서 인생을 배우고 있었다.




함께여서 할 수 있었고,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던 스노우보딩.

그때 만약 친구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아마 아직도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뭐든 일단 해보자, 하면 된다!라는 걸 또 한 번 일깨워준 스노우보드, 그리고 나의 친구.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의 보딩은 계속된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겠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울고, 겨울을 느끼고, 인생을 배워나가겠지. 내년만 돼도 우리보다 휠씬 더 잘 타게 될 우리 아이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겨울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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