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의 내용이 시뮬라시옹이라고?

시뮬라시옹

by ODG

얼마 전 나는 100일 디자인 챌린지에 참여했다. 매일 실무 디자인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덕분에 디자이너로 직업을 확장할 용기를 얻었다.

챌린지에서 주관하는 유명 디자이너의 특강 이벤트도 있었다. 좋은 기회였다. 문제는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까지 가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한두 시간 특강을 듣는다는 사실도 가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마치 부산에서 누군가 내 팔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기차에 올랐다.

강의장에 앉아 예상했던 어색한 공간과 공기를 느끼고 있을 때 특강이 시작되었고 첫 질문으로 강사님이 물었다. "디자인과 예술의 차이는 뭘까요?" 다른 참가자들은 제법 괜찮은 대답을 내놓았고, 강사님이 감탄하는 답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도 답을 하지 못했다. 이 공간이 더 어색해졌다. 이 자리에 와있는 예비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나는 더 자격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강사님의 결론은 간단했다.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참으로 심플하면서 명쾌한 답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따스한 햇살이 있는 어느 날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하길래 그냥 들어가 봤다. 전시되어 있는 현대미술 작품을 보면서 그때의 말이 생각이 났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나눌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경계에 대한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가까운 과거로 예를 들면 사진이 발명됐을 때다. 당시 화가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예술의 중요한 가치는 대상을 얼마나 정확하고 아름답게 묘사하느냐였는데, 사진은 그걸 버튼 한 번으로 해냈으니까.


화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림으로 계속해야 할까. 그 고민 끝에 미술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과 순간의 느낌을 담았고, 입체파는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다.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화가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지가 중요해진 거다.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하나의 예로 많이 드는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비슷한 상황에 서 있다.

요즘 디자인 관련 기사나 SNS를 보면 절반은 이런 이야기인 것 같다. 생성형 AI 덕분에 이제 일반인도 디자인할 수 있다고.


그럼 AI가 만든 결과물은 어디까지가 디자인일까.


이제 막 디자이너에 도전하는 나는 그런 제목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금 디자이너가 되려는 게 시대착오는 아닐까. 나는 디자이너일까, 창의성이란 게 나에게는 있는 걸까.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이직업은 지속가능할까.


매주 화요일이 되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아본다. 몇 주 전부터 유튜브 추천 영상에 '공각기동대를 이해하려면 시뮬라시옹을 알아야 한다'는 제목이 떠 있었다. 시뮬라시옹이 궁금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봤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느끼던 답답함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었다.


시뮬라시옹이라는 말을 정의한 사람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인데, 그는 현대 사회를 가장 날카롭게 분석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그의 말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우리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세계에 살고 있다."


1. 시뮬라크르 (복제물)

그는 진짜를 흉내 낸 가짜들을 시뮬라크르라고 불렀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가짜들이 너무 많아져서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붕어빵을 생각해 보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그냥 붕어 모양으로 만든 빵이다. 진짜 붕어를 본떠 만든 가짜, 복제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진짜 붕어보다 길거리 붕어빵을 더 친숙하게 느낀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건 바다의 붕어가 아니라 호호 불어먹는 붕어빵이다. 복제품이 원본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2. 시뮬라시옹 (가짜가 진짜를 삼키는 과정)

가짜가 진짜를 흉내 내다가 나중에는 진짜를 아예 대체해 버리는 마법 같은 현상을 시뮬라시옹이라고 정의하고, 이 과정을 4단계로 설명했는데, 가장 쉬운 비유는 지도다.

진짜 지형을 그대로 그린 지도: (진짜를 반영함)

지형을 조금 더 예쁘게 보정한 지도: (진짜를 왜곡함)

지형은 없는데 지도만 예쁘게 그려진 것: (진짜가 없는 데 있는 척함)

지도 자체가 땅보다 더 중요해진 상황: (지도가 현실을 결정함)

결국 우리는 실제 땅(현실)을 밟고 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지도(TV, SNS, 뉴스 등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세상을 진짜라고 믿으며 살게 된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이미 우리 세계가 시뮬라시옹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어쩌면 그런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세상.


공각기동대는 인간의 신체와 기억마저 데이터로 복제되는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 나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원본의 상실을 보여주고 가짜인 전뇌 기계 몸이 진짜 육체를 대신한다는 설정이다. 가공의 기억이 현실을 지배하면서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상황을 맞이하면서 생각의 혼란이 발생한다. 결국 이 작품은 육체라는 실재를 벗어나 네트워크라는 기호의 바다로 녹아드는 스토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시뮬라시옹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경계의 혼란을 미리 예견해 주는 듯한 심오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AI가 만든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실제 사진이나 그림을 학습해서 비슷한 걸 만들어낸다. 하지만 점점 AI가 만든 결과물끼리 섞이고, 다시 그걸 학습하면서 원본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해진다. 결국에는 원본이 뭔지 알 수 없는, 그저 AI 이미지라는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AI 디자인이 지금 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아, 이런 말이구나.'


내가 고민할 것은 경계를 찾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시뮬라크르가 되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만드는 것도, 내가 선택한 직업도 그 안에 있다. 그렇다면 진짜 디자이너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무엇을 만들고 있느냐다.


내가 만든 어떤 작업물도 복제의 영역 안에 있다. 하지만 내가 잘 참고하고 나의 형태로 새롭게 탄생시키면 그 자체로 시뮬라크르가 되는 거다. 창의성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직업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건강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고민 때문에 위축되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아무 변화 없는 세상에 사는 것과 같다.

나는 다짐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나만의 세계관을 만들면 된다.

걱정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