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이 당신의 눈을 멀게 한다

무주의 맹시

by ODG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종강 파티의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8살이나 많은 학우가 툭 던진 한마디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까 복도에서 눈인사까지 했는데 정말 모른 체하고 지나가더라. 조금 섭섭했어."


'응?' 사과를 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를 본 기억이 없다. 복도에서의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본다. 점심시간이었고 직후에 치를 시험 문제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지만 분명 앞을 똑바로 보고 걷고 있었는데?'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경우를 종종 마주한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인지적으로는 눈을 감아버린 것과 다름없는 상태. 사실 이 현상을 설명해 주는 용어가 있다. 바로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다.


에이미 E. 허먼의 저서 <우아한 관찰주의자>에서는 이 현상을 우리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정보를 놓치는 아주 흔한 뇌의 작동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무주의 맹시

무주의 맹시는 우리가 어떤 한 가지 사실에 강력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 시야에 분명히 들어와 있는 다른 중요한 정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의 뇌는 효율성을 극도로 추구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 없어서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잡음으로 간주해 걸러버리는 선택을 한다.


이 저서에서도 무주의 맹시를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유명한 실험을 소개한다.


투명 고릴라 실험

사람들에게 농구 패스 횟수를 세어달라고 부탁했다. 영상 중간에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가슴을 두드리고 지나갔지만 숫자를 세는 데 집중한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코끼리 광고의 역설

어느 안전 캠페인 영상에서는 화면 한구석에 커다란 코끼리가 앉아 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대화나 자막에 집중하느라 그 거대한 코끼리의 존재를 영상이 끝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우리 역시 매번 뇌에게 속는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의 대화에 열중하느라 방금 주문한 메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순간, 안경을 머리 위에 쓰고 온 집안을 뒤지는 코미디 같은 상황들은 모두 뇌가 특정 목적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나머지를 과감히 삭제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져 버린다

문제는 이 삭제 기능이 일상의 해프닝을 넘어 우리의 전문성까지 위협한다는 점이다. 특히 디테일이 중요한 일에서 무주의 맹시는 가장 치명적인 적이 된다. 이 인지적 결함이 국가적 규모로 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8년 칠레 조폐국은 50페소 동전을 새로 발행하기 위해 1년 동안 전문가들을 투입했다. 그들은 정교한 무늬와 성분에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150만 개를 발행했다. 그런데 그 동전에는 국가 이름인 CHILE가 아닌 CHIIE라는 오타가 박혀 있었다.

직원은 해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그들은 불성실했을까? 아니 그들은 너무나 성실했다. 위조 방지 패턴의 곡률과 금속의 광택을 맞추는 고난도 과제에 영혼을 갈아 넣느라 정작 대문짝만 한 오타라는 고릴라를 인지할 뇌의 자원을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해결책이 뭐야

우리는 흔히 이런 실수를 하면 '더 꼼꼼히 봐야지', '더 정신 차려야지'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무주의 맹시 사례에서 보듯이 더 간절히 보려 할수록 더 완벽하게 처리하려 할수록 우리는 더 안 보이는 장님이 될 확률이 높다. 이것은 당신의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자책한다고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결책은 더 강력한 집중이 아니라 시선의 강제적 환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칠레 조폐국의 전문가들에게 필요했던 건 돋보기가 아니라 작업 도중 창밖을 한 번 보거나 동전을 거꾸로 돌려보는 엉뚱한 여유였을지도 모른다. 뇌가 스스로 쳐놓은 집중의 터널을 깨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야를 흐트러뜨리는 장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집중의 함정에서 빠져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진실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예 영구적인 장님으로 만드는 더 무서운 장벽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로 익숙함이라는 안대다. 집중하느라 못 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뇌의 사고라면 익숙해서 안 보는 것은 관찰의 멈춤이다. 다 안다는 착각에 빠져 더 이상 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상태. 이보다 더 위험한 신호는 없다. 매일 마주하기에 안다고 믿었던 것들 속에서 못 봤던 진실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한번 그에게 물어보자.




왓슨 : 셜록, 저 사람을 보고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셜록 : 간단하네. 왓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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