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관찰주의자
우리는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지도 모른다.
혹시 미술관에 갔을 때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서서 "와, 멋지다" 한마디 던지고 슬쩍 훑어본 뒤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인다면 작품 옆에 붙은 설명 글을 한 번 읽어보는 정도일 것이다.
우리는 한 작품 앞에 얼마나 머물러 있을까?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작품 하나를 보는 시간을 실제로 재 본 것인데 결과는 꽤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이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의 중간값은 고작 17초였다.
17초.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본 걸까? 사실 17초는 무언가를 감상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두고 사람들이 작품을 깊이 보기보다
'뭔 뜻이야'
'내 스타일은 아니네'
'익숙한 그림이네'
'지루하다'
처럼 즉시 판단하고 이동해 버린다고 해석했다.
슬프게도 우리의 뇌는 처음부터 예술을 깊게 감상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고 한다.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 때문이다. 뇌는 눈앞의 대상이 위험한지, 유익한지, 혹은 내가 아는 것인지를 순식간에 스캔하고 분류한다. 즉 보는 행위가 스캔하는 시스템으로 먼저 작동한다는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이 생존 본능을 발휘하며 작품의 껍데기만 빠르게 훑고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막막한 질문에 대해 에이미 E. 허먼은 그녀의 저서 <우아한 관찰주의자>를 통해 아주 극단적이고도 명쾌한 처방을 내린다.
"한 작품을 3시간 동안 지켜보라"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3시간? 그게 정말 가능한 시간인가?'
문득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갔을 때의 풍경이 떠올랐다. 거대한 전시실 한가운데에는 긴 벤치가 놓여 있었고 그곳엔 꽤 많은 사람이 장시간 앉아 있었다. 처음엔 그저 다리가 아파 쉬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벤치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한 작품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그곳의 입장료 정책이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1회 입장료는 약 15유로대인데 연간 패스는 30유로대밖에 되지 않았다. 두 번 올 가격이면 일 년 내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매일 미술관에 들러 벤치에 앉아서 한 작품을 수십 분씩 혹은 수 시간씩 공들여 뜯어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장 우리에게 미술관에서 한 작품을 3시간 동안 보라고 하면 다들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작품을 마주할 때는 평소 보던 17초보다 조금만 더 길게 딱 몇 분이라도 보는 시도를 해보길 권한다. 유화라면 17초 동안 스캔했을 때는 결코 보이지 않던 붓터치의 결이나 그림 위를 떠다니다 우연히 붙어버린 작은 먼지들까지 보이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저서 <우아한 관찰주의자>에서 오직 시간 하나로만 관찰의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의 가장 첫머리에서 관찰하는 시간을 강조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관찰은 능력이 아니라 참는 기술이다
사람이 한 대상을 끈질기게 바라볼 때 인식은 놀라운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고 생각한다.
1단계: 즉각적 판단(처음 1분 내외) - '이건 이런 그림이네' 하고 뇌가 분류를 마친다.
2단계: 지루함과 불편함(1~10분) - 더 볼 게 없다고 느껴지는 고비의 구간이다. 대부분 여기서 자리를 뜬다.
3단계: 디테일의 발견(30분~1시간) - 이 불편함을 견뎌내면 비로소 디테일이 말을 걸어온다. 보이지 않던 붓질의 방향, 의도적으로 어긋난 형태, 구석에 숨겨진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4단계: 작가의 의도 목격(2~3시간) - 비로소 작품이 아닌 작가의 선택이 보인다. '왜 이 부분은 비워뒀지?', '이건 실수가 아니라 의도였구나!'라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다.
결국 3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는 우리의 뇌가 자동 판단 모드를 완전히 끄고 진짜 관찰 모드로 전환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는 임계점이 있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그동안 나는 관찰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날카로운 직관력은 타고난 감각이거나 이미 전문가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 나와는 참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관찰력은 타고난 시력이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며 참아내는 기술에 가깝다고 말해준다. 이 문장이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17초 만에 결론을 내리고 싶은 조급함을 누르고 대상이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 시간을 내어주는 정성. 그것이 관찰의 시작이라면 나 같은 디자이너도 충분히 연습해 볼 만한 기술이지 않을까.
"자 이제 미술관에만 가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