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 육아 / 음식

아침 밥상, 사색 나물로 건강함을 부르는 소박함

by 스무디

흰쌀밥, 자반고등어,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표고버섯, 구운 김, 수정과


오늘 아침 차려두고 아무도 먹지 못해 내 차지가 된 것!




제목에는
소박하다고 썼지만

나물을 맛나게 무치는 데는

보기보다 큰 비용과 노력이 든다.


유기농 채소를 사면

흙빛이 남은 뿌리를 일일이 다듬어내고

시들거나 무언가 묻은 이파리는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하고 헹구어 내야만 한다.


상추를 먹다가 애벌레나 달팽이 변이 붙은 것을

봤다고 해도 웃어넘기며 살짝 그 부분만 떼고

먹어도 괜찮았던 그런 시절이 지난지 오래다.


아무리 애쓰고 다리가 퉁퉁 부어 혈관이 터지도록 차려내도 정성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모자라다고

흉을 받는다면 그 판단기준은 으레 결과물과 맛이다.


그러기에 식재료 준비부터 완성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요리'인데, 그중에도 나물무침과 재료를 익히지 않고 먹는 생물 반찬이 제일 그러한 것 같다.


운 좋게 농약도 안치고

당일 입고된 싱싱한 것을 골라

구석구석 깨끗하게 다듬었다고 하자.


여기까지 소요된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농약이나 유기농 마크를 확인하고 없으면

다른 마트로 옮겨 일일이 확인해 봐야 한다.


막상 적당해 보여서 고른 채소가

가격도 적당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면 양과 가격까지 알맞게 맞추기 위해

다시 고민하며 이것저것 견주어보기 일쑤다.

그러다가 마땅치 않게 되면 재래시장이나

노점으로 발길을 돌린다.


너무 많이 사면 남겨서 버리기 쉽고

너무 고가로 사면 알뜰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좀처럼 걷히지 않는 나는 이 땅의 보통 주부다.


위처럼 살피며 장보다 보면

왕복 도보 시간 포함하여 2~3시간 든다.

장 본 비닐봉지 들고 버스를 타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내가 든 장보기 봉지는 항상 크고 무겁다.


나물 한 가지만 차리면 너무 적어 보여서

여러 가지 한꺼번에 살 때가 많고

부족한 양념을 구입하기도 하고...

특히 식구들이 마실 음료수를

거의 매일 사는데 그게 무게가 꽤 나간다.


그래도 매번 음료만 배달 주문하기도 그렇고

눈으로 못 본 채소나 다른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도

후기 확인해야 하고 회원 가입해서 로그인 정보 기억해야 하고 잘못 사면 바꾸고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구입해서 다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깐 채소를 사면 조금 절약되지만 비용은 더 든다.

나도 조금 노력해서 직접 다듬기를 선호해왔다.


씻고 꼼꼼하게 확인하며

먹기 좋게 질긴 부분 떼어내고

지저분한 부위 잘라내고 하다 보면

쓰레기 처분과 설거지나 싱크 청소 같은

뒷정리도 해야 하므로

대략 2~30분은 내어두어야 한다.


만약 더 빨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신체 에너지가 그만큼 과잉 소진되어

무리한 노동으로 건강에 이상신호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종종 집안일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왕 움직이는 거라면 운동기구 돌리는 심정처럼

신체 건강에 도움을 주는 근육 키우기나 허리 펴기,

두뇌회전을 위한 자극과 사고력 증진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일을 반기며 해내려 한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드는 요리를 했는데

맛있지 않다는 이유로 슬쩍 외면받는다면

긍정적인 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것 같다.


나물을 삶거나 데치는데,

기름에 볶거나 양념해서 간을 맞추는데,

파마늘이나 후추를 넣어 향과 미각을 살리는데,

깨소금이나 통깨를 뿌려 마지막 가열로 완성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까?


그렇게 애쓴 작품이 아무도 먹어주지 않아

주부가 혼자 즐기는 음식으로 남았다면 어떨까?


다시 또 그런 과정을 똑같이 되풀이하고 싶어질까?.


그러면 점점 맛있어지거나 식구들이 익숙해져서

다음에 하는 요리는 맛있게 먹게 될까?


답은 아니다.


그들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엄마는 그 입맛에 맞추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끝이 없는 하늘에서 끝을 찾으려는 심정으로...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베풀라는 어느 육아 상담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 외에도 살아오며 많이 들은 말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과정을 매일 반복하며 살았다면

그건 사랑을 충분히 베푼 결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이것도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야 한다는 명언도 있기 때문에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었다면 벌써 감동하거나 잘 먹고

건강하게 자랐어야 할 아이들이 다른 간식을

탐색하기 일쑤고 눈치 보며 밥상을 피하거나 가라앉은

기분으로 누군가 시켜서 먹는 것처럼 우물거리기도 한다. 그러면 또 억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붙는다. 좋은 엄마는 애써 노력해서 차린 걸 먹이지 못해도 기꺼이 수고를 감내하며 식구들에게 다시 줄 애정을 살뜰히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진정한 전업 주부가 얼마나 될까?

만약 그러길 바랬다고 해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사랑이란 음식을 해내거나

아픈 데를 돌보거나

환경을 깨끗하게 보살펴주는 등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맥락에서 이해되어야하는 것이다.


전공이 요리거나 식당에서 요리를 업으로 하는 부모가

집에서 무일푼에 정성껏 식구들에게 음식을 해주어

기쁨을 주었다면 사랑일 수 있지 않나...


전공이 생물학이고 박사학위가 있는 교수님이

집에서 무일푼에 정성껏 요리를 해 올리느라

자신의 연구성과를 축소시키고

직장에서 밀려나고 계신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런 경우에는 자식들도 부모가 해준 요리를 맛있게 못 먹는 경우가 많다.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의 미래나 가정의 현대화에 맞추는데도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도 알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로맨틱하게 행복이나 사랑의 감정이 부족해서라는

추상적인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사회적으로는 바보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에...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엔 주어진 책임과 의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당장 통하지 않더라도 위와 같은 장보기와 요리의 순환 과정을 십 년 이십 년 꾸준히 지속한다면

하늘이 감복하여 건강과 가족애를 내려주신다고 여기는가?


진정한 마음과 인내심의 문제인데 성급하게 결과를 가리려고 하는 오류쯤으로 보이는가?


몇십 년 동안 해두어도 먹지 않거나 맛없다고 홀대받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소모한 시간을 모아서 공부나 일에 할애했다면 더 윤택하고 행복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가혹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과거는 사랑으로 덮어두자. 그 결과가 지금 무엇이든 지난 건 사랑 맞다.

식구나 자녀들이 앞으로도 부모님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여긴다면 축복받은 사랑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그 마음은 매일 평생이 똑같을 수 있겠는가?


넓게 보면 세상에서

더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싶은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

어른도 맛집을 찾고 그럴 때가 많은데!


조건 없이 무한히 베풀어주는 사랑은 위대하지만

그 양상에 공통적인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보자.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은

때때로 집단 헤게모니에 갇힌

소수자를 옭아매듯

강력한 무기나 공격력이 되기도 하므로...


보이지 않는 사랑까지 보태어 가족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주부님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존경하는 동시에,

한 쪽 입장에 치우친 고루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정이 줄어들기를 소망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의 식사가 맛있기를♡




요리가 사랑이라면
더없이 맛있게 먹어줄 때

요리가 희생이라면
애쓴 상에 상처가 얹어진 것

요리가 헌신이라면
사 먹어도 똑같다고 여겼음을


그러므로 육아에서 음식은...?
그냥 '성장에 필요충분 요건'이다.






By 글쓰는 주부의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