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수첩] 틀렸다고 말할 용기
횡설수설~ 현재를 사는 지혜
각종 전문자료들과 정보가 넘쳐난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자신있게 권하는
생활팁 등은 얼핏보면 유용한듯 하지만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실천하려고 들자면
삶의 의미를 잊고 흔들리게 만들 때도 있다.
그것이 이러한 시대에 완연히 물들게 하는데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데 나아가 성장하는데는
방해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느껴지는 원인 같다.
흔하게, '필요한 정보만 보라.'
속독으로 '다량의 글 중 옥석을 가릴 줄 알아야한다.'
'자신에게 맞게 활용하라...' 등의
안전지침 같은 주의멘트를 들어본 기억이 있다.
아예 관심두지 않고 나 자신의 상황에 골몰할 때
비로소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게 될 때도 있다.
이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선행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정으로 남과 어울리는 이타심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이기적이어야 하는 시간들을
마치 터널을 통과하는 자동차처럼
견뎌야 한다는 뜻과도 통한다.
그래서 오늘도 속으로 읊조려 본다.
'아니, 틀렸어. 참 훌륭한 조언이지만 그 말도 다 맞는 것 같지만 내겐 아니거든! 적어도 지금은 말야!'
당신의 말이 틀리다고 응답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이질감을 자극해
나와 멀어지게 만들수도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지
어언 십년이 지났다. 생각이 다른 건 자연적인 것인데 왜 불쾌해하는지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힘들어서 그런 이유가 큰 것 같다. 사람이다보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께서
진지하게 내색을 해주셨고 나는 왜 내가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어려웠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이후로도 종종 가졌었다.
사람들은 긍정과 부정적인 대화를 구분한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긍정의 대화는 기분을 좋게 하거나 동기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지만 위기나 문제상황에서 그리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갈등을 피하면서 나 자신을 낮추며 사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며 오랜 시간을 성장해왔었다.
"너 죽는다~~~"
위 말이 한국에서 뿌리를 두고 자란 사람이라면
진짜 죽인다는 뜻이 전혀 아님을 알 것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위와 같은 말을 장난처럼 해도
놀이를 하며 사용해도 마치 협박이나 선전포고처럼
상대방을 겁먹게하는 폭언으로 취급받게 되었다.
아직 성인들은 체감이 어려울지 몰라도
요즘 어린 아이들은 저런 말을 거의 안쓴다.
그리 오래 산 것 같지는 않은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어른들이 사용하시던 정과 사랑, 의지의 말들이
부담되거나 무서운 나쁜말들로 떠밀리기도 한다.
아무리 세계화에 맞춰 언어습관도 바뀐다지만
우리 고유 말의 맛을 지키면서 순화될 수는 없을까?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건 틀렸어. 내 생각이 지금의 이 상황에는 맞아'
... 라고 하는 건 처럼.
그래서 혼자임이 편안해질 때가 있거나...
변하지 않음으로 인해 다져지는 힘이 있다.
그런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