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미래

28년전/ 1993년 - 윤 2

by 설하

“우리는 안 될 것 같아.”

“왜요? 내가 나이가 어려서?”

나이가 어린것도 문제였지만 윤은 진심으로 우리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마음이 맞아도, 계속 생각이 나도, 왠지 안 될 것 같다.

윤은 나이가 어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연인이든, 친구이든, 선후배든, 모든 관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윤은 대학 2학년이다. 군대도 안 갔다. 하지만 나는 취직해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이 태산이었다. 나는 우리는 극복할 수 없을 거라며 사귄 적도 없는 만남을 끝내려했다.

“이제 다시 못 보는 거예요?”

“그래야 한다면.”

윤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셔버렸다. 나는 이미 다 마셔서 빈 컵에 녹차티백을 넣었다 뺐다 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윤과 만나면 할 얘기가 넘쳐났는데. 우리는 서로 외면하며 카페를 나왔다. 이제 나는 일주일 후 졸업이라서 더 이상 윤과 만날 일도 없을 것이다.

나의 졸업식에 윤은 오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전화했지만 윤은 그날 너무 아팠다고 했다. 마음이 잘 맞고 잘 통했던 우리도 결국 그렇게 끝나는 거였다.


내가 졸업할 무렵, 동기 남자들은 거의 군대에 갔다. 혜림은 아버지가 건축회사 사장이라 그 회사에 들어갔다. 여자동기 대부분은 더 공부한다며 대학원을 가거나 어학연수, 혹은 유학을 갔다. 나는 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당장 학자금대출부터 갚아야 했다.

정치외교학과는 취직이 되지 않는 과로 유명하다. 일찍부터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은 외무고시며 행정고시를 보았고 부모님이 사업을 사는 사람들은 부모님 사업을 도왔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를 가야할지 전혀 정해지지 않아 오히려 길이 다양했다. 어떤 선배의 말에 의하면 배추장사부터 국회의원까지 모두 다 가능한 과라고 한다.

어차피 나는 전공인 정치외교 쪽에는 전혀 뜻이 없고, 학점도 스펙도 아무것도 없는 나를 기업 쪽에서는 뽑아주지 않으니까 취직할 수도 없다. 몇 번 이력서를 냈다가 영업직인 것을 알고 더 이상 내지 않았다. 나는 내성적이라 영업에는 전혀 재능이 없다.

선희는 공무원 시험을 보자고 했다. 선희는 4학년 때 같은 집행부에서 일한 제일 친한 친구였다. 공무원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출퇴근시간이 정확해서, 끝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움직였다. 선희와 나는 종로 서적에 가서 수험 공부 책을 사왔다. 시험은 세 달 후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5시 40분, 지하철 첫차를 타고 학교 도서관으로 등교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이미 7시가 되어 도서관의 자리가 거의 차고 있었다. 대학입학 후 처음으로 졸업하고 나서야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도서관에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속에서 나는 공무원 수험서를 펼쳤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공부를 해 본적이 없다. 대학 때는 사회과학 책읽기와 세미나만 했다. 다시 시작하려니 막막했지만 공무원시험은 내게 절실한 문제였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누구도 나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왔고 저녁은 컵라면을 먹었다. 도서관에는 매점만 있을 뿐 식당은 없다. 학생회관의 식당까지는 멀었고 거기까지 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렇지만 사실은 후배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취직도 못하고 풀 죽어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선희는 늦게 11시쯤 되면 나타났다. 4학년 말에 대선(대통령선거)운동본부에서 알게 된 예비역 선배도 같이 공부했다. 선희, 행정학과 예비역 선배, 나 이렇게 셋이서 공부친구가 되었다. 쉬는 시간에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10시쯤 되면 집에 가는 지하철로 함께 걸어갔다.


학교도서관으로 출퇴근한지 2주가 흘렀다. 학교에는 상큼한 개학의 분위기가 가득 차있다. 신입생들도 들어오고 단과대 건물마다 동아리 신입 회원 모집 현수막이 붙었다. 호숫가 오솔길에는 자그마한 연보라빛 제비꽃이 곳곳에 피어났다. 나는 공부하다가 가끔 밖에 나와서 호숫가를 걸으며 작은 제비꽃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날은 총학생회 출범식이 학생회관 뒤편에 있는 호숫가 옆, 노천극장에서 펼쳐졌다. 나와 선희는 잠깐 구경가기로 했다. 전 같으면 그 자리에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졸업생이다. 우리는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과 깃발을 든 학생들이 속속 노천극장에 모여들었다. 노천극장은 아래쪽에 무대가 있고 무대를 둘러싼 반원형 층층계단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맨 위쪽에 서서 모여드는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봄 햇살아래 다채로운 색깔의 옷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해보였다.

학생들이 거의 자리에 앉아 행사가 시작될 무렵, 하얀 카디건에 감색 바지를 입은 학생이 아래쪽 계단을 가로 질러왔다. 멀리서도 한눈에 나는 윤임을 알아보았다.

‘아, 윤도 왔구나. 이제 3학년이니까.’

나의 심장이 갑자기 급하게 뛰었다. 더는 볼 수가 없다. 나는 뒤로 돌아서며 가자고 말했다. 선희는 더 보자고 했지만 나는 공부해야한다며 노천극장을 돌아 나왔다. 도서관에 돌아와 한국사책을 펼쳤다. 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다. 자꾸만 우리들의 추억이 떠올랐다.


양심수의 밤 이후로도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윤의 친구 수의 자취방에서 수가 잠든 사이 밤새 얘기했고, 민족문화학교에서 하는 강의에 함께 가서 참여했으며,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민중가요 가수/그룹) 공연에도 함께 갔다.

노찾사공연은 편집부회원과 같이 갔다.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가고 나와 윤은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 그날 나는 갑자기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나의 말에 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여행갈까요?”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서울역으로 갔다. 우리는 목포행 기차 편을 끊었다. 기차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도하고 잠깐 서로 어깨에 기대어 잠도 잤다. 5시간이 지난 후, 새벽 6시에 목포에 도착했다.

우리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목포 앞바다에 있는 율도로 배편을 끊었다. 하지만 나오는 배가 1시간 후에 한 번 있을 뿐 더 이상 없어서 한 시간만 율도에서 머물렀다. 율도의 선착장 바위에 앉았다. 함께 파도를 바라보았다. 바다에는 까만 작은 디스켓 같은 것들이 점점이 펼쳐져있다. 김양식장 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갈매기만이 왔다 갔다 했다.

윤도 아버지에 대한 힘든 기억이 있다. 윤은 4대 독자라서 곱게 자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버지가 3대 독자라 다섯 명의 누나 밑의 장남이라서 어릴 때부터 떠받들어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기만 알뿐 아내와 자기 자식을 위할 줄 몰랐다. 윤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다. 오히려 여동생이 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윤은 어머니를 닮아서 여성스런 성격이었다.

우리는 다시 목포항으로 돌아와 서울로 기차 편을 끊었다. 윤은 술은 먹지 않지만 담배는 피웠다. 나는 담배는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를 가볍게 했는데 윤은 갑자기 발끈했다.

“선배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잖아요?”

내 머리 속에 갑자기 빨간색 경고등이 들어왔다. 우리가 이런 말도 할 수 없는 관계라면 여기에 왜 같이 온 거지? 윤은 우리 관계에 진지한 것 같지 않다. 이 모든 게 장난일까. 윤은 나를 가볍게 좋아할 뿐 아무런 고민도 없어보였다.

나는 돌아오는 기차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기했지만 윤과 선후배관계로 정리하자고 마음먹었다. 여행 내내했던 윤과의 대화가 재밌긴 했지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목포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후 나는 카페에서 윤과 헤어졌다.


“영화 보러 갈래? 세 시간 후 만날 수 있어?”

우연히 노천극장에서 윤을 본 건 거의 한달 만이었다, 그 주 토요일에 나는 전화를 했다. 윤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호암아트홀에서 영화를 보았다. 「파워 오브 원(power of one)」이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인종차별과 노예해방에 관한 감동적인 영화였다.

“아프리카 음악과 대자연이 잘 어울려요. 거기 가보고 싶네요.”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아프리카야. 왠지 나는 아프리카가 고향 같아.”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길에서도, 호프집에 가서도 막차로 헤어질 때까지 영화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너무 유쾌해서 온 세상이 파스텔 핑크빛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반대방향이라 헤어져야 함에도 오래도록 개찰구에 서있었다.


나는 왜 윤과 헤어져야 했을까? 다가오는 윤을 왜 밀어냈던 걸까?

이렇게 잘 통하고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데 단지 나이가 어려서? 그것도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윤의 고백이후 6개월 동안 난 행동은 아니었지만 말로는 항상 우린 선 후배관계라고 규정지어 왔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 나의 감정을 숨기지 않기로 말이다. 다음날 나는 편지에 이제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써서 학교 편지함에 넣었다.

윤은 나를 찾아올 것이다. 나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나는 목포여행에서 내가 윤과 헤어지려한 이유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림으로써 스스로 편해졌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며칠 후 저녁이었다. 한참 문제를 풀고 있는데 나의 책상 앞으로 그림자가 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조금 고개를 돌려 도서관 옆 창을 바라보았다. 도서관은 사면의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있다. 밤이라서 밖은 캄캄했고 전등 불빛에 도서관 안이 반사되어 보였다. 내 뒤에 하늘색 마의가 비쳤다. 윤이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움직일 수 없었다. 몇 초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윤도 잠시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공부 잘돼요?”

“아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데.”

나는 풀고 있던 모의고사 책을 들어 보였다. 윤의 손에는 분홍색 장미 한 다발이 들려있다. 그는 나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윤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핑크빛 미래만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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