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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2. 2024

그동안 힘든 걸 몰랐었다면 너무 낙천적이었을까?

-공원 고양이들 36 / 리리 2-1

 〔리리가 어제 교통사고로 다리가 골절된 것을 발견했어요. 병원에 갔더니 병원비가 엄청 나올 것 같다고 해서 집에 그냥 데리고 있어요. 밤새 울고 난리인데 어떡하죠.…〕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월요일, 공원 캣맘 J님에게서 장문의 문자가 와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병원이 아니라고?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데려오라고 하고 바로 입원시켰다. 두 달된 공원 애기 고양이 리리는 사고 난 지 하루가 지나서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뒷다리 두 개가 모두 부러져 수술해서 뼈에 핀을 박아 넣었다. 뼈가 잘 붙기 위해서는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50cm정도의 네모난 유리로 된 입원실에 들어갔다. 

 다행인 것은 다리만 부러졌다는 것이라고, 골반이나 항문, 엉덩이 쪽은 멀쩡해서 나중에 나으면 배변이나 걷는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수의사는 말했다. 

 그래. 다행이긴 다행인데. 

 나 또한 입원비며, 수술비가 걱정되었다. 집 고양이라 해도 몇 백만 원이 나오면 큰돈일 것이다. 그런데 공원 고양이라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다 해도 어떻게 입원시키지 않을 수가 있어.

 J님이 이해안가는 것은 아니었다. 월세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공원 고양이들을 개냥이로 만든 것에 J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매일 밤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원 고양이들을 모아놓고 만지곤 했으니까.


 “저, 이 애기 고양이 입양하시겠어요?”

점심시간, 공원에서 리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물었다. 

 “네? 저요? 저는 이미 여섯 마리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요.”

 “아! 고양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관심? 관심 정도겠어?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다. 아마 근처 지역주민이겠지. 그러나 가장 아쉬운 사람은 나였다. 여기 공원은 모두 내가 돌보는, 모두 내가 이름 지어준, 모두 내가 중성화시킨 고양이들이 사는 지역이다. 

 이 공원을 책임지고 있는 내가, 개냥이가 위험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있는 나야말로 리리의 입양이 시급하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겠지. 입양 때문에 얼마나 전화하고 고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들 이유가 있었다. 남편이 싫어한다든지, 가족 중 한사람이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든지, 집이 너무 좁다든지. 강아지를 키운다든지. 하는 그런. 

 한숨만 나왔다. 방법이 없었다. 

  한 달 반 된 작은 치즈 고양이. 어디서 왔는지 몰라도 3주전 쯤 공원으로 이사 왔다. 개냥이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입양이 어렵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절실히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개냥이라면?


 평화로워 보이는 공원,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지나가는 공간, 공원은 동물에 호의적인 사람도 많지만, 오픈된 공간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물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타겟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밤에 몰래 나타난다. 상상하기도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수 있다. 고양이들은 112에 전화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안 무서워하는 고양이라면 차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통사고 위험이 개냥이들은 몇 배로 커지게 된다.

 사람들은 고양이와 놀 뿐이지만 결국 남겨지는 것은 그들이다. 입양하지 않는다면, 데려가지 못한다면, 그들이 스스로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살아남을 수 있도록, 위기의 순간, 도망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따르는, 도망가지 않는 개냥이들은 개냥이가 아닌 고양이들보다 훨씬 더 교통사고와 동물학대자의 위험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이 무서운 사실! 이런 사실들을 사람들이 알 리 없고 관심도 없겠지. 


 걱정스럽게도 처음 나타났을 때와는 다르게 리리는 급속도로 개냥이가 되어갔다. 아기고양이라서 귀엽다고 사람들은 간식도 가져오고 심지어 몇 명은 장난감까지 가져와서 놀아주었다. 이젠 사람이기만 하면 리리는 누구에게라도 다가갔다. 

 처음에는 고양이에게 너무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길고양이를 개냥이를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충분히 이유를 설명했고 그 당시에는 알았다고 했는데도 다음날이 되면 그들은 어김없이 또 장난감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도대체 왜! 

 나도 근무시간에는 나갈 수가 없고 점심시간과 근무 후에 잠깐 나가는 거라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권한 또한 없었다. 그래서 이젠 그런 사람들을 보아도 한숨만 쉴 뿐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리리를 데리고 노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나는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그렇게 놀았던 사람들 모두, 리리가 두 달째 병원에 있어서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개냥이를 만든 사람들은 소식도 모르고, 나에게 떠맡겨지다니! 

 그래도 어찌됐든 다친 고양이는 치료받아야한다. 나는 동아리 모금도 하고 동아리 회비에서도 갹출했지만 상당부분 모자랐다. 내가 책임져야했다. 다행히 상속받은 돈이 있었다. 어차피 내게 안 올수도 있던 돈이지 않나? 맘이 편해졌다. 


 문제는 더 큰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동물병원에서 골절치료를 받으면서도 리리는 무럭무럭 커갔다. 생후 두 달 때 병원에 들어와서 70일을 치료실에 있었다. 넉 달밖에 안 되는 생의 반을 병원에서 보낸 것이다. 

 애기 때도 입양이 되지 않았는데 병원에 있고 다리도 성치 않은 아이를 누가 입양할까?

공원에 살던 아이라서 방사가 답이었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개냥이기 때문에 방사한다면 또다시 사람들이 데리고 놀겠지. 테리가 죽은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난감했다. 병원에서는 다 나았다며 퇴원하라는데 리리는 갈 데가 없다. 개냥이만 아니었다면 아무리 병원비를 많이 냈어도 방사했을 것이다. 다른 어떤 방법도 없었으니까.


 우리 집에는 6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방이 3개였지만 여섯 번째 고양이 루나가 합사가 안 되어 격리할 방이 없었다. 루나도 거실에서 생활한지 1년 반이 넘었다. 입양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들과 남편 모두 당연히 반대했다. 나는 절망했다.

 “어떻게 방사해. 그럴 수는 없어. 정말 어떡하지.”

민혁은 외면했고 별이와 슬이가 반대 끝에 함께 고민했다. 별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베란다에 격리할까? 거기 햇볕도 잘 들어 따스하고, 나름 넓잖아. 2주만 격리하고 루나랑 거실로 합사하는 거 어때요?”

 “아. 베란다. 괜찮겠다. 설마 루나가 죽이지는 않겠지.”

 베란다는 폴딩 도어로 되어있어서 닫으면 거실과 격리된다. 정리를 하니 1인 가구 전세를 주어도 될 만큼 넓고 좋은 공간이 나왔다. 움직일 수조차 없는 케이지 같은 병원 입원실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리리의 다리는 잘 나아서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한숨만 나왔다. 합사가 잘 될까. 이런. 

 그동안 힘든 걸 몰랐었다면 너무 낙천적이었을까? 무거운 짐을 진 것을 이제야 깨달은 듯 나는 깊은 숨을 또 다시 내쉬었다.

우리 집에 온지 이틀 째, 리리는 천진난만하게 베란다를 뛰어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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