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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l 02. 2024

분노의 포도

-존스타인벡/ 세계문학전집 중에서

-세계문학전집 174

존스타인 벡


25장


 캘리포니아의 봄은 아름답다. 과실수들이 꽃을 피우는 계곡은 향기로운 분홍색을 띠고, 수심이 얕은 바다에는 하얀 물이 흐른다. 옹이가 진 오래된 포도 덩굴에서 부풀어 오른 덩굴손들이 폭포처럼 아래로 번져가며 줄기를 덮는다. -중략-

제일 먼저 버찌가 익는다. 값은 1파운드에 1센트 반, 젠장. 그 가격에 버찌를 수확하면 뭐 해. 검은 버찌. 빨간 버찌. 잘 익어서 달다. 새들이 버찌의 절반을 먹어서 구멍이 뚫렸고, 그 구멍 속으로 말벌들이 붕붕거리며 날아들어간다. 그리고 이제 검은 껍질만 남은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말라간다. 

 자주색 서양자두가 익어서 부드럽고 달게 변한다. 젠장, 저걸 따서 말릴 수도 없고 유황처리를 할 수도 없어. 인부들 품삯을 아무리 싸게 쳐 줘도 그 돈을 지불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서 자주색 서양 자두가 양탄자처럼 땅을 덮는다. 처음에는 껍질이 약간 쭈글쭈글해지고, 파리들이 몰려들어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썩어가는 열매의 달콤한 냄새가 계곡을 가득 채운다. 과육이 검게 변하고, 열매가 땅 위에서 시들어간다.

 배가 노랗게 익어간다. 값은 1톤에 5달러. 50파운드짜리 상자 사십개에 5달러라는 얘기다. 나무의 가지를 치고, 약을 뿌리고, 열매를 따서 상자에 넣어 트럭으로 통조림 공장에 배달하는 작업. 이런 작업을 거친 배 사십 상자가 5달러. 이건 말도 안 돼. 그래서 노란색 열매가 바닥으로 털썩 떨어져 터져 버린다. 말벌들이 부드러운 과육에 구멍을 뚫고, 열매가 썩어 가는 냄새가 난다.

 그리고 포도. 우린 고급 포도주를 만들 수 없어. 사람들이 고급 포도주를 살 여유가 없으니까. 덩굴에서 포도를 따 버려. 좋은 포도든, 썩은 포도든, 나나니벌에세 찔린 포도든, 줄기도 통 속에 넣고 밟아. 흙도 썩은 것도 다 넣어버려.

 하지만 포도주 만드는 통에 곰팡이랑 개미산이 있는데. 그럼 유황하고 타닌산을 넣어.

포도주가 발효할 때 나는 풍요로운 향기가 아니라, 화학약품과 썩는 냄새가 난다.

뭐, 그래도 그 안에 알코올이 있잖아. 저걸 먹고 취할 수만 있으면 되지 뭐.

 소규모 농부들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빚이 쌓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나무에 약을 뿌리며 농사를 지었지만 아무것도 팔지 못했다. 가지도 치고 접붙이기도 해 주었지만 열매를 따지 못했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도 열심히 일하고 많은 생각을 했지만, 열매는 땅 위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리고 포도주 만드는 통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공기를 오염시킨다. 포도주 맛을 좀 봐. 포도 향이 전혀 안 나잖아. 유황, 타닌산, 알코올 맛뿐이야.

 이 조그만 과수원도 내년이면 대지주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빚이 과수원 주인의 목을 조르고 있으니까.

 이 포도원도 은행 소유가 될 것이다. 오로지 대지주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통조림 공장도 같이 소유하고 있으므로, 배 네 개의 껍질을 벗겨 반으로 잘라서 통조림으로 만드는 비용이 15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통조림 배는 썩지도 않는다. 통조림은 몇 년 동안이나 버틸 수 있다. 

 과일 썩는 냄새가 캘리포니아 주 전체로 퍼져 나간다이 달콤한 냄새는 이 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커다란 슬픔을 보여준다나무를 접붙일 줄도 알고 씨앗을 심어 크고 풍요로운 열매를 길러 낼 줄도 아는 사람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굶주린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른 열매를 먹일 길이 없다. 새로운 과일을 만들어 낸 사람들도 사람들에게 그 열매를 먹일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 낼 수 없다이런 실패가 커다란 슬픔이 되어 캘리포니아 주를 뒤덮고 있다. 

 값을 유지하기 위해 덩굴과 나무의 뿌리가 만들어 낸 열매들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 이것이 무엇보다 슬프고 쓰라린 일이다. 차에 가득가득 실린 오렌지들이 땅바닥에 버려진다. 사람들이 그 과일을 얻으려고 먼 길을 왔지만, 그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냥 차를 몰고 나가서 오렌지를 주워 올 수 있다면, 열두 개에 20센트를 주고 오렌지를 사 먹을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호스를 가지고 와서 오렌지에 휘발유를 뿌린다. 그들은 과일을 그냥 주워가려고 온 범죄자들에게 화가 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과일을 먹고 싶어 하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색 오렌지 위에는 휘발유가 뿌려진다. 

 썩는 냄새가 일대를 가득 채운다.

 커피를 태워 배의 연료로 써라. 옥수수를 태워 난방을 해라. 옥수수는 뜨겁게 타니까. 강에 감자를 버리고 강둑에 경비를 세워 굶주린 사람들이 감자를 건져 가지 못하게 해라. 돼지를 죽여 묻어 버려라. 그리고 그 썩은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도록 내버려 둬라.

 고발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다. 울음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다른 모든 성공을 뒤덮어버리는 실패가 있다. 비옥한 땅, 곧게 자라는 나무들, 튼튼한 줄기, 다 익은 열매. 그런데 펠라그라를 앓고 있는 아이들은 그냥 죽어 갈 수밖에 없다. 오렌지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검시관들은 사망 증명서에 사인을 영양실조로 적어넣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일부러 식량을 썩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만히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감자를 바라본다. 도랑 속에서 죽임을 당해 생석회에 가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에 귀를 기울인다. 산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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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타인벡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것으로 알려진 「분노의 포도」. 왜 포도에 분노가 붙었을까?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좋은 기후라서 산처럼 과일들이 쌓여가도 사람들은 굶주리며 죽어간다. 식량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윤을 못 남긴다면 모두 불태워진다. 이윤은 생명보다 대단한 가치다. 이윤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생명에도, 국가에도, 지구에도, 모든 이데올로기를 대신한다. 분노의 포도가 써진지 100년이 지났다. 지금의 시대는 그때보다 훨씬 더 심화된 자본주의다. 존 스타인벡이 살아있다면 무엇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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