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을 좋아하는 나, 에이지즘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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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무뒹철입니다. 첫 주제로 뭘 가져와야 하나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세무뒹철에서 써야지!” 하고 메모했던 걸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무겁고 깊게 들어가는 주제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 내다 제일 가벼운 질문 들고 와봤습니다.
당신들은 연애 상대를 볼 때 연상, 연하, 동갑 중 무슨 파 인가요? 저는 예로부터 한결같이 연상만을 외쳐온 지독한 연상파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 레즈비언입니다.
저는 정말 도무지 언니가 좋습니다.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정말 좋아하고요. 단어 자체에서 심장이 뛰어버립니다. (농담이에요) 그냥 언니라는 존재 자체가 행복합니다. 이유를 물어본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는 없지만요. 사람이 무언가 좋아하는 데 이유가 필요합니까? 이거에 대해서도 나중에 세무뒹철에서 다뤄봐야겠군요.
반면에 저의 친구 S는 강력한 연하파입니다. 연하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S와 연상, 연하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선명해서 그 이후에도 누군가 제게 연상과 연하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S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S의 이론은 이러합니다.
연상이 ‘어른스럽게’ 군다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놀랄 일도 아닙니다. 다만, 연상이 ‘어른스럽게’ 굴지 못한다면 ‘저 나이 먹고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죠. 반대로 연하를 살펴봅시다. 연하가 ‘어른스럽게’ 행동한다면 반전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연하가 ‘어른스럽게’ 굴지 못한다면?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가 되는 것이죠. 이로 하여금 연상보다 연하가 옳다는 것이 S의 지론입니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꽤 그럴듯한 이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저는 ‘연상이 좋아’를 외칩니다. 누군가 제 이상형을 물어보면 저는 늘 ‘어른스러운’ 사람을 말해왔습니다. 왜일까요?
이쯤 되면 제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다시 말해야 하는데요. 저는 그냥 오로지 나이가 저보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는 그랬는데요. 연애 경험을 쌓다 보니 연상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연하 같은 연상’은 정말 최악입니다. ‘연상 같은 연상’이 바로 제가 바라는 것이지요. ‘어른스러운’ 사람. 애 같지 않은 사람. 이것이 제가 바라는 이상형입니다.
그렇다면 ‘연상 같은’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아마도 제 머리에 있는 ‘연상’의 이미지는 대개 사람들의 머리에 있는 ‘연상’의 이미지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럼 도대체 이 이미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연하 같은’, ‘동갑 같은’, ‘연상 같은’의 이미지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요?
생각해 보면 굉장히 우습고 이상한 일입니다. 연상이 연상답지 못하게 행동 했을 때 ‘저 나이 먹고 왜 저래’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죠? 그렇다면 ‘저 나이’, ‘그 나이’에 행동해야 하는 지령이라도 있는 걸까요? 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선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물론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요. 여전히 ‘나잇값’이라는 꼬리표는 우리를 따라옵니다.
또 다른 일화가 하나 떠오릅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이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24살 이상이면 돼”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대학 졸업 후 직장에 다닐 나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대학생은 안 되고, 직장을 다니거나 경제적 활동을 하는 친구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세계에서 24살은 20살에 현역으로 4년제 대학을 입학하고, 휴학 없이 모든 학기를 마치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해 직장에 다니는 나이인 것입니다. 물론 그런 24살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24살만 있나요? 아닙니다. 28살에 대학을 다니고 있을 수도, 22살에 직장을 다닐 수도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고요.
한국 사회에서는 이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14살부터 16살에는 중학교에 다녀야 하고, 17살에서 19살에는 고등학교에 가야 하고, 20살부터 23살은 대학에, 24살 이후에는 직장에 있어야 할 곳만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28살에 연봉은 어느 정도. 30살에 자차는 있어야 하고. 40살에는 결혼하고 애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에서 벗어난 이들이 있으면 대단한 취급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만 보통 대부분은 비난의 눈초리나 때로는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하죠.
물론 이 잣대가 과거에 비해 훨씬 유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한국 사회에서 ‘나이의 힘’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합니다. 중학생 때 고작 1년 차이일 뿐인데도 선배를 보면 90도로 인사를 해야 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너 몇 살이야.” 다들 직접 듣진 않았어도 간접적으로라도 흔히 들어본 말이죠?
보통 이것을 ‘연령차별(ageism)’이라고 합니다. 1969년 미국의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가 정의한 것으로 나이에 근거한 고정관념이나 특정 연령층을 향한 차별과 편견을 말합니다. 연령차별은 꼭 노인이나 늙은 사람들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잼민이’, ‘급식충’이라는 단어에 담긴 비하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명절에 본가에 가서 잔소리 듣기 싫은 것도 에이지즘에 포함됩니다.
각종 커뮤니티에 등장한 잔소리 메뉴판 이미지
그렇다면 연상을 좋아하는 저는 연령 차별적인 사람일까요? 저도 모르게 연상에게 바라는, ‘그 나이’에 걸맞은 행동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뭐가 됐든 사람을 나이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에이지즘에 반대하니까요.
가볍게 적으려고 한 이야기가 에이지즘까지 왔습니다. 사실 에이지즘과 페미니즘,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계급 사회를 구성하는지 엮어 글을 적다가 ‘또 깊게 들어가네’ 싶어 지워버렸습니다. 그저 당신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연상과 연하, 동갑 중 선호하는 취향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것이 맞는지. 연령차별에 근거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일단 저부터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