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들지 않은 캄캄한 새벽, 국제행사 한영 아나운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행사가 없다면 아직 곤히 자고 있을 오전 5시 경 나는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킨다. 국제회의통역사로서의 김세연이 아닌 한영 아나운서인 김세연이 이토록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다. 행사 전 소위 '헤메'를 마쳐야 하기 때문.
행사 전 진행할 리허설 타임에 여유있게 도착하려면 6시까지는 메이크업 샵에 도착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단골 메이크업샵과 오늘의 행사장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다. 덕분에 오늘은 조금 더 잘 수 있었다.
이 일을 하다보면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마이너의 손인 것을.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할 때의 내 모습이 사뭇 초라한 이유이다.
초창기 여러 메이크업 샵을 전전하다 나에게 딱 맞는 샵을 찾아 그 이후부터는 늘 해당 샵만 방문하고는 한다. 물론 행사장과 거리가 있을 경우, 특히 출근 시간대와 이동 시간이 겹친 경우에는 선택권이 없다. 행사장 근처 처음 가보는 샵에 도전해야 하는 일이 허다하다.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자.'
국제회의통역사&한영MC가 되기 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얻은 결론이다. 결국 전문가가 제일 잘 알더라.
그래서 나는 '오늘은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에 간단한 행사 내용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티스트님들께 맡긴다. 단골의 장점은 나를 잘 아는 분들께 나를 맡길 수 있다는 것. 내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어느 부분을 보완하고자 하는지 너무 잘 아시는 분들이라 늘 만족스럽게 헤어 메이크업을 마무리한다.
샵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요새 뭐가 맛있다든가.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걸 보면서 나이가 들었다는 걸 확 느낀다든가.
바로 뒤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손님의 이야기도 의도치 않게 들려오고는 하는데, 나를 놀라게 하는 부분은 꽤 많은 손님이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꼭두새벽부터 메이크업 샵에 방문한다는 것이다.
정보 부족의 이유이든 지갑 사정이 가벼운 이유이든 내 20대 시절에는 헤어 메이크업 샵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다르다는 걸 새삼 느낀다.
행사장 도착.
담당자 분들보다 일찍 도착했다.
오늘도 지난번 행사와 동일한 행사장이다. 1회부터 한영MC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행사인데 감사하게도 올해 또 불러주셨다.
참석자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50:50정도이지만, 올해는 특별히 한국어보다는 영어 비중을 높여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혹시 몰라 대본은 한영병기로 준비해 왔다. 흘러가는 추이를 보고 필요하다면 행사 상황에 맞게 필요한 언어를 골라 쓸 예정이다.
같은 행사에 매번 초청받는다는 건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매년 사라지고 또 새롭게 생겨나는 행사들 사이에서 흔치 않은 안정감을 받을 수 있다. 프리랜서의 고질병인 고용 불안감도 순간적으로나마 해소해준다. 시험보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내 진행 스타일을 좋아해주신다는 안도감이 있으니 마음의 무게도 작게나마 사라지는 기분이다.
올해도 담당자 분들과 환한 미소로 인사를 나누며 리허설을 시작했다.
오늘은 팝페라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서 공연자 분의 리허설과 함께 한껏 귀호강 할 수 있었다. 꽤 여러번 노래를 부르시면서 리허설을 꼼꼼하게 준비하셨는데 덕분에 나는 이미 공연 한 회 관람 완료.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인 Il Mondo, The Prayer를 불러주셔서 너무 들떠버렸다.
공연 리허설을 마친 뒤 사회자 리허설은 간단하게 진행했다. 마이크 음향, 동선, 전반적인 프로그램 진행 사항을 점검하고 변동사항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지난번 행사에서 연사들의 발표 시간이 지나치게 늘어지는 이슈가 있어서, 올해 행사에서는 발표에 대한 코멘트를 간단하게 내가 요약해서 정리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발표 시간도 크게 줄었다. 그러다 보니 손에 쥔 펜이 쉴 틈이 없었다.
핵심 키워드를 부랴부랴 노트하고 정리 멘트까지 준비하다보니 발표 세션에서 에너지 소비가 굉장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틈을 주지 않으려 몸속에 저장해둔 에너지까지 한껏 꺼내써버렸다. 덕분에 차질없이 마지막 연사까지 발표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마지막 공연까지 멋지게 마무리. 두 번 들어도 좋았다는 후문.
"왜 이렇게 잘하세요?"
행사가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 앞으로 오신 관객분께서 나에게 다가와 물으셨다.
얼떨떨했지만 내심 너무 감동이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백 번 천 번을 들어도 늘 마음에 남는다.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다.
올해도 무사히 잘 마무리 했구나. 혹시 잘못된 건 없는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굴려대던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려고 노력(...) 하며(완벽주의의 말로다).
행사가 모두 마무리 된 뒤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자켓부터 벗어던지고 후드 집업을 턱 걸친다.
상쾌한 퇴근길.
오늘은 맛있는 걸 먹어야지.
다음번 행사에 또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이른 새벽부터 시작했던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다.
김세연 한영 MC·아나운서
국제회의 통역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전달하는 한영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섭외문의
ksy@seulacommunic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