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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Jul 04. 2024

에필로그:시작되는 또다른 전쟁, 그리고 작가의 변(辯)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끝나가는 2차 세계대전, 시작되는 냉전


  전쟁이 막바지로 흘러가던 1945년 2월, 소련 크림반도의 얄타에서는 세계사에 큰 족적을 남긴 연합군의 정상회담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스탈린이 모여 종전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와 교통정리를 위해 모였던 것이지요. 

얄타회담의 유명한 사진. 각국은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타내려 나름 노력했지만, 세부적인 사안에서까지 완전히 상호 동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치 독일이라는 거대한 적을 맞아 함께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웠지만, 너무나도 상반된 정체성과 이념의 차이는 컸습니다. 서방과 소련은 전쟁 이후,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자신들도 모르게 서서히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전쟁 이후 소련과 벌어질 패권경쟁에 대해 엄청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이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지속해서 전달하였으나,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련과의 협력을 통해 정세안정을 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의 협상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였습니다. 

  이들이 가장 먼저 논의한 것은 당면한 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였습니다. 이들은 먼저 동부 독일의 영토를 폴란드에게 할양하는 문제나, 독일에 대한 전범재판 등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였습니다. 그러나, 화기애애한 협상의 뒤에선 앞으로 벌어진 이념전쟁에 대한 야욕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분리 : 철의 장막(iron curtain)과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 그리고 마셜플랜(Marshall Plan)


  2차 세계대전이 끝난 그다음 해, 1946년 2월 윈스턴 처칠은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을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처칠은 지난 선거에서 패배하여 총리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영국의 총리라는 공식 타이틀을 지니지 않은, 조금은 가벼운 메시지의 방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연단에 올라가서 연설을 하기 시작하자, 달변가이자 전직 총리로서의 무게감이 더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연설의 내용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연설을 하고 있는 윈스턴 처칠의 모습. 달변가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던 그는, 철의 장막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한번 거대한 논란의 중심에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처칠은 이 연설에서 그 유명한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사실 이 표현은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쉽게 말해 자유주의 서방세계와 공산주의 동구권 사이에 거대한 철의 장막이 쳐져있다고 빗댄 것입니다. 처칠은 이 연설을 통해 철의 장막 너머의 동부유럽 국가들, 그리고 그것을 조정통제하고 있는 소련에 대한 비난했던 것입니다.

처칠이 말했던 철의 장막. 검은색의 두꺼운 경계선이 바로 철의 장막입니다. 이처럼, 서방세계와 동구권 사이에 거대하게 그리워진 거대한 균열을 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소련과의 이상기류가 흘러가고 있을 무렵,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한 연설에서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발표하였습니다. 미국은 이제 2차 세계대전처럼 고립주의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완연한 개입주의로 나서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급증하고 있는 공산주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필요한 지원과 개입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일환으로, 1947년 7월 미국의 마셜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참모총장이었다가, 현재는 국무장관이 된 조지 C. 마셜의 이름을 딴 이 플랜은, 쉽게 말해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 대한 어마어마한 재정적 지원 계획이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 성장이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빠르게 경제적/사회적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마셜 플랜에 대해 소련은 불쾌해했지만요.

마셜 플랜의 주도자, 조지 C. 마셜의 모습. 마셜 플랜은 서유럽의 전후 혼란을 빠르게 종식시켰고, 서유럽에 대한 공산권의 진출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서방세계와 동구권 사이에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장엄하고도 엄청난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향후 몇십 년 간, 세계의 정치지형을 완전히 뒤바꾸게 될, 길고도 치열했던 냉전(冷戰, Cold War)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치며.... 그리고 작가의 변(辯)


  이렇게 해서, 약 28부 정도의 길이로 [처음부터 천천히,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연재가 끝이 났습니다. 제가 군생활을 하면서 동료 장교들, 그리고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나오는 것이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단편적인 전투나 일화에 대해서는 알아도,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왔습니다.


  이 브런치북은 바로 그런 부분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입문할 수 있는, 조금 더 쉽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글을 써보자! 하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다 쓰고 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자료조사나 사진자료를 구하면서, 어떤 식으로 글을 구성하고 작성해야 조금 더 "재미"있고 이해가 쉬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각각의 전투마다 더 세부적이고 자세히 풀 수 있는 내용도, 분량에 의해 과감히 삭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설명드리겠다"는 저의 변명이 글 중간중간 자주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인지 글의 무게감이 조금 가벼워진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옛날이야기를 듣는듯한 느낌의 구어체로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자료조사와 다양한 사진자료를 첨부하여 "재미"와 "객관성"을 모두 잡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각각의 부분에서 조금은 부족한 내용이 많겠습니다만, 적어도 "왜곡"이나 없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고 나름대로 자그마한 자부를 해봅니다 ㅎㅎ


  앞으로도 전쟁사 시리즈(?) 글은 계속해서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다음 글은 나폴레옹 일대기, 혹은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연재를 한다면 10부 내외로 하면서 조금 더 무게감을 줄이고, 세부적인 살을 붙이는 것은 각각의 다른 글들로 찾아뵈려고 합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제 연재글을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디에 소개하기에도 창피한 글들의 모음집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2차 세계대전의 큰 그림을 한 번 그려드릴 수 있었던 저의 영광스러운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연구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천천히, 2차 세계대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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