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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휘찬 Feb 06. 2024

[일본 소도시 여행] 일본의 전쟁 기억 - 쿠레(呉)로

일본 소도시 여행기 - 히로시마, 구레

  <이 세상의 한 구석에(この世界の片隅に)> 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이 혹여 있으실까 싶습니다. 히로시마 출신의 '스즈'라는 처녀가, 히로시마 남쪽에 위치한 군항도시 '쿠레()'에 시집을 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애니메이션입니다. 물론 작품의 배경 당시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라, 일본 해군의 주요 군항이었던 쿠레에서 공습도 당하고, 전쟁통에서의 배급을 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이번 일본 여행은 이미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여행이었습니다. 이미 관광지 위주의 여행은 다 해보았기 때문에, 일본사로 학위논문을 작성한 것과 맞물려 이번에는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히로시마쿠레를 첫 행선지로 정하고 움직였습니다. 인천 - 히로시마 아침 비행기를 통해 아침 일찍,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하면서 공식적인 여행의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시마역 8번 플랫폼, 쿠레선(Kure Line)의 열차모습. 노란색 Y가 바로 쿠레선의 상징색인데, 내부는 매우 넓고 쾌적해서 아주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공항에서 공항 리무진 버스를 이용해 히로시마 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다시 열차를 이용해 쿠레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본의 열차나 지하철 시스템은 처음엔 조금 적응이 어려웠지만, 익숙해지면 참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여행인지라, 조금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나름 익숙하게 플랫폼을 잘 찾아서 출발했습니다. 

  구레역에 도착하니, 역 - 쇼핑타운 - 야마토 뮤지엄이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야마토 뮤지엄과 '철고래관(테츠노쿠지라관)'을 한꺼번에 구경할 예정입니다. 나름대로 전쟁의 전함을 주역으로 하고 있는 곳이다 보니, 한국인으로서 조금 조심스럽고 부담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일본을 연구해야 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좌측에 보이는 건물이 야마토 뮤지엄, 우측에 보이는 잠수함이 철고래관입니다. 저 잠수함은 실제로 해상자위대에서 운용하던 것이 퇴역한 이후 전시해 놓았다고 합니다.

  구름다리를 통해 이동하다 보니, 우측에 거대한 잠수함이 육지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철고래관은 나중에 보도록 하고, 일단 오늘의 주요 목적지인 야마토 뮤지엄으로의 걸음을 재촉합니다. 야마토 뮤지엄은 바로 잠수함의 길 건너편에 바로 자리 잡고 있어 헷갈리지 않고 바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입구엔 전함 <무츠>의 실제 주포와 스크류가 함께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전함 무츠는 교전으로 격침당한 것이 아닌, 어이없는 가스누출 사고로 스스로 폭발(!) 해버린 비운의 전함입니다. 그래도 역시 전함 <나가토>의 자매함으로,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거대한 주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야마토 뮤지엄으로 입장하면, 이렇게 거대한 전함 <야마토>가 박물관의 가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부터가 굉장히 거대한 체급이어서 그런지, 1/10 크기로 줄였는데도 굉장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전함 <야마토>는 출현 당시 세계 최대 크기의 전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어마무시한 함선이었습니다. 자매함인 <무사시>와 함께 일본의 최강 전함의 위용을 가지고 있었으나, 결국 일본군 수뇌부가 대미개전 이후 그렇게 주장하던 '함대결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격침당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야마토 전함의 모형 앞에서 군국주의 찬양이라던가, 과거 제국의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도감(?)도 잠시,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제2관에서 불쑥 찾아오게 되었는데...

  위 사진에서 보이시는 무기는 <카이텐>이라는 무기로, 사람이 탑승하는 자폭어뢰였습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항공기의 자폭공격, 카미카제가 바다밑에서도 있었다고 생각하시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폭공격이 굉장히 숙연하고 숭고한 것처럼 그려지는 듯한 박물관의 무거운 분위기가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이 종반으로 치닫던 1944년 후반기, 일본은 그렇게나 자신하던 사이판 전투에서 미군에게 패배하였습니다. 단순히 전투에서 지고 사이판을 빼앗겼다는 것을 넘어서서, 일본군이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했던 '궤멸적 타격'을 미군에게 입히는 데에도 실패했습니다. 전략적으로도, 작전적으로도 모두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가토 요코<일본은 왜 점점 더 큰 전쟁으로 나아갔을까>에서 나온 의견처럼, 사실상 전쟁의 향방은 이때에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군사전략은 실패했고, 승부의 무게추가 완전히 미국에 기울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는 "일격을 가해 향후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버릴 수 없었고, 그러한 고집 아래 희생하지 않아도 될 청년들이 희생되어 갔던 것이었습니다. 

  예전 MBC 다큐에서 나왔던, 전쟁 시 일본군으로 참전했던 오쿠자키 겐조 씨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그의 연대는 연대장 이하 모두 굶어 죽었고, 불필요한 전황에서 상부의 옥쇄명령을 통해 명령 불복종자들을 사살했던 상급자들을 찾아가 주먹질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천황도 실수를 했으면 전쟁의 책임에 대해 자국민들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그놈(그의 표현입니다)은 그런 것도 안 했다'는 아주 강경한 의견을 표출하기도 했지요. 


  즉, 이미 패전이 확실한 전쟁에서, 그 "일격"이라는 것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젊은 영혼들이 숱하게 죽어갔습니다. 자폭공격, 옥쇄명령이라는 형태로요. 물론, 이러한 자폭공격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도 인민군의 전차를 향해 가했던 공격방식이지만, 그것은 전황이 불리한 상태에서 자발적인 "한 개인의 영웅적 행위"였습니다. 국가단위로 자폭부대를 조직하고, 희망하지 않는 자에게도 자폭공격을 강요한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두려운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저의 불편함이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옛 제국의 영광을 찬양하거나, 재무장론을 강경하게 주장하는 군국주의적 움직임이 있었다면 오히려 이렇게까지 마음이 불편하진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강경한 군국주의자들은 오히려 극우의 정치 스펙트럼으로 분류되는 반면에, 이러한 자폭공격이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점철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본인들 스스로도 '아주 힘들고 어려운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근간에 퍼져나가면, 일본 자신도 전쟁의 피해자라는 입장이라 착오하면서 주변국에 대한 사과문제나 기타 역사문제에서 올바른 인식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인 국뽕론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글귀를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어디서든 역사과 정치를 끌고 와서 현대에 대입하는 극한의 민족주의적 사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어떻게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파트너십을 가져가야만 하는가, 하는 시대적 과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조금 잡설과 사견이 너무 녹아들어 갔네요. 아무튼, 이러한 복잡 다난하고 어려운 생각과 감정들을 함께 떠 앉은 가슴으로, 저의 일본 소도시 여행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엔 아무래도 저의 학위논문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다 보니, 조금은 복잡하고 애매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글들이 너무 많았네요. 

  역사적 / 정치적 내용보다는, 일본 소도시를 둘러보는 조용한 느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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