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정리의 대단함에 대하여
본 내용은 제가 중대장 임무수행 당시, 우울증을 겪으면서 부대에 계시던 민간 상담사님께 받은 심리"상담"내용의 경험담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의료적/전문적인 내용은 아니니 절대 맹신하지 마시고, '이런 사례의 상담도 있었구나'라고 이해해 주시고, 우울증과 관련되어서는 가까운 병원을 가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내가 맡았던 중대장의 임무는 항상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사령부 직할 중대장이다 보니 대부분이 부대관리, 특히 병사들의 신상 관리였다. 육해공군의 모든 병사들을 관리하면서, 다양한 성격의 인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부딪히기 때문에, 이를 조정/통제한다는 것은 얼핏 쉬우면서도 굉장히 복잡한 문제였다.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하지만, 중대장이라는 지휘관으로서, 그리고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타당하다면, 그것을 모두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점이 나를 괴롭게 했다. 게다가 병사들의 건의를 듣고 타당한 안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대장님 등 상급자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이렇게 하루종일 사람들을 대하면서 진이 빠졌다는 점과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이 찾아왔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나의 방은 점차 더러워졌다. 본래 내가 조금 정리정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서, 그야말로 쓰레기장과도 같은 환경이 펼쳐졌다. 먹다 남은 음료수 캔과 샌드위치 비닐이 책상 컴퓨터 자리에 쌓여갔고, 나의 외모도 그 방의 더러움을 닮아갔다.
머리를 감지 않고, 면도를 하지 않고 출근하는 날이 잦아졌고, 퇴근해서도 방 정리나 샤워는 고사하고, 아주 기초적인 쓰레기조차 버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의 코로나 시국이 가져다주던 마스크 의무착용이 나의 꼬질함을 가려주는 방패막이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초췌한 상태로, 나의 네 번째 상담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마스크 좀 한 번 내려보실래요?"
2주 만에 처음 만나게 된 상담사님이 커피를 내려주시고서는 제일 먼저 한 말씀이었다. 머리야 대충 향수와 포마드로 해결(?)했지만, 나의 턱과 인중에 이미 일주일간 자라난 거대한 풀밭들은 도저히 숨길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아 제가 지금 오늘 면도를 못해서요!"라고 최후의 저항을 해보았지만, 계속되는 권유에 결국 마스크를 벗고 대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방도 지금 엄청 지저분하시죠?"
계속해서 들어오는 2 연타에 마음은 조금 아팠지만, 이내 수긍하고 상담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바쁘기도 하고, 또 퇴근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 싫었다고. 상담사님은 친절하게 말씀을 이어나갔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들어보기는 많이 들어봤었죠. 요즘 여기저기서도 많이 들리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그럼,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뀌는 나로서는, 내 생각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지만, 에이, 이러려고 상담받는 거니까! 하는 치기 어린 마음에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물론, 솔직하게 말해도 되겠냐는 것을 상담사님께 먼저 말씀드렸고, 동의를 구했다.
"저는 사실 그 말을 굉장히 허황된 거 같다고 생각해요. 그냥 좋은 말로 대책 없이 위로해 주는 거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듣는다고 해서 내 현실이 바뀌지는 않으니까,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이 저한텐 짜증으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그리고 내가 싫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사랑부터 하라고 하니까 거부감도 있습니다."
상담사님은 으레 그렇듯이 내 말을 가로막지 않으셨고, 다 듣고 나신 뒤 말문을 여셨다.
"저는 중대장님의 의견을 존중해요. 또한 내가 나를 귀하게 '생각'만 한다고 해서는 변하게 없다는 말씀에도 동의하고요. 저는 '생각'이 아니라, 나를 사랑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그 말의 내용까지는 동의하지 못했다. 결국 나를 스스로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하는 건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또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듣기엔 내 인생이 아직도 우울하고 힘들기만 한데. 나는 다시 반문했다.
"그걸 모르겠어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상투적인 것만큼이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그게 뭐든 생각을 멈추고 행동을 해야 돼요. 나를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요. 잘 모르시겠다면, 일단 거울에 서서 나를 먼저 보세요. 그냥 거울에서 미친 '상'을 보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스스로가 나를 바라보는 거예요. 제일 눈에 띄는 게 뭐예요?"
"수염이랑.. 떡진 머리요."
"나를 초췌하게 만들지 마시고, 하나둘씩 먼저 없애보세요. 나를 위하는 것처럼."
상담사님의 이번 과제(?)는 매우 간단했다. 먼저, 나를 존중하는 일을 하루에 하나만 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은 매우 작은 것이라도 상관없다는 것.
그렇게 나는, 첫날 세수와 면도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은 머리 감기. 하나씩 해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무슨 감화를 받아서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상담사님과의 약속과 더불어 다음 상담 때까지 이를 들키면 안 되기 때문(!)이었던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나는 하나씩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출근 전 세수와 면도, 퇴근 후 머리감기를 하고 나서 여느 때처럼 책상 앞에 앉았는데, 문득 모니터를 둘러싸고 있는 만리장성 같은 빈 음료수 캔과 과자봉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보았다. 이런 쓰레기장에서 살아가기엔, 나는 세수와 면도, 머리 감기까지 한 멀끔한 청년이었다.
거기에서 찾아오는 불쾌감이, 어울리지 않는 그 두 개의 모습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찾아 방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울증은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주변에서 좋은 말을 해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변화는 오지 않는다. 사실 우울증이 괜히 우울증이 아니기에, 무언가를 하기에도, 해내기에도 녹록지 않다는 것은 그것을 경험한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만이라도 매일 해내는 것. 그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것을 위한 노력과 그 용기는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나에겐, 그것이 바로 면도였다. 아침에 면도를 하고 나면, 그 하루는 멀끔한 용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이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위축되지 않아도 되는 하나의 "구실"이 되어주었다.
물론, 하루아침에 면도를 한다고 해서 확 바뀌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작은 면도라도, 매일매일 하다 보면 언젠가, 그 멀끔한 모습을 하고서 쓰레기장에서 살아가던 나의 모순됨을 알아차린 나의 마음처럼 당신의 우울에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우울증을 겪고 있는 모두가, 자신만의 면도를 찾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