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우울증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개인적인 성향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었다. 우울증에 걸렸기에 이런 눈치를 보았는지, 아니면 이렇게 눈치를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변해버린 나의 시선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좁아지고 좁아져서 다른 사람들의 모든 행동들이 다 나와 연관 있다는 그 시선, 그래서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나의 치부 때문에 생겨난다는 바로 그 시선이었다.
오늘 회의에서 대대장이 뭔가 모르게 짜증을 냈다면, 그것은 당연스럽게 나의 "어떤 것"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나의 복장? 아니면 태도였을까? 표정을 어떻게 지었더라? 그보다, 회의장에서 경례를 할 때 손동작이 이상했나? 이러한 생각의 끝은 결국 "왜 나한테만 저 지 X을 하는 걸까?"라는, 모든 것을 포기한 분노에 가까운 감정으로 끝이 난다. 그러한 감정의 알고리즘이 진행되는 동안, 나의 진이 빠져버리면서 결국 또 다른 사건에서도 짜증과 더불어 우울감이 밀려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나의 세 번째 상담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상담사님은 오랜만에 보는 나의 모습에 반가워하시면서, 여러 가지 근황을 물어보셨다. "잘 지내셨어요?"라는 물음에 나는 통상 "예 뭐.. 잘 지냈습니다"라는 평범한 이야기로 주로 대응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온 세상이 나를 괴롭히고 있고, 그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빨리 이야기해야 했다. 마음이 급했다. 상담사님의 첫마디에 나는 오늘,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있었던 모든 일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상담사님은 아무 말 없이 나의 말에 경청해 주셨는데, 바로 그 모습 때문에 나는 더 쏟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상담사님께 쏟아내었던 주요 내용은 대부분 주변인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들이었다. 오늘 회의에서 대대장은 또 짜증을 냈고, 주변에 있는 다른 모 소령은 나를 불러다가 질책했고, 나의 상황도 잘 모르면서 주변에서는 나를 비판했고, 그럼에도 중대원들은 중대장의 이런 마음도 모르고 또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요즘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온 세상이 나를 억까'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상담사님은 빙긋 웃는 얼굴로 나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은 아주 짧으면서도, 나의 모든 감정과 생각의 근간을 흔들어놓기에 매우 충분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셔도.."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잖아요? 저를 싫어하시니까, 이젠 무슨 일만 있으면 저부터 다그치고 보시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의 이런 대답에 상담사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질문을 다시 해볼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뭐예요?"
"근거라면.. 원래부터도 나를 싫어했고.."
"그러니까요. 원래부터도 나를 싫어했다는, 누가 들어도 납득할만한 근거가 뭐가 있었을까요?"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물론, 대대장이 나를 싫어하고 있다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완벽하게 100%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대장은 오늘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상관에게 혼났을 수도, 아침에 부부싸움을 했을 수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니, 어떻게 생각하는 게 우리에게 건강할까요? 팩트만 생각하셔야 돼요. 팩트는, 대대장은 오늘 기분이 나빴다는 거예요. 그 팩트에 대한 근거들은 우리가 찾을 수도 있지만, 찾지 못하는 근거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중대장님은 그러한 근거를 그냥 <나를 싫어한다>는 가장 찾기 쉽고 편안한 방법으로 납득하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그런가요.. 그런데 대대장님이 만약에 그런 개인적인 일들로 짜증이 나셨을 수도 있다고 쳐도, 그러한 짜증을 저에게 푸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 아닐까요? 제가 부처님 공자님도 아니고 그 사람이 개인적인 일들로 인해 짜증이 났다는 것을 알 방법도, 그리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다 이해해줘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담을 하면서, 나도 이제는 내 감정을 설명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나의 이런 반박 아닌 반박(?)에, 상담사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세요. 그런데, 그건 대대장님이 하셔야 할 몫이에요. 개인적으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잘 숨기고 컨트롤하는 것, 부하 앞에서 그것을 티 내지 말고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대대장님이 하셔야 할 몫이에요. 그리고 중대장님이 저에게 말씀하신 사건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대대장님은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개인의 몫을 다 하지 못하신 거고요. 그런데 그것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고려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을까요?"
나는 납득했다. 결국 짜증을 내고 안 내고는 대대장의 몫이었다. 그 몫이 옳고 그른 것인지 판단하기 이전에,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할 권리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생각을 하셔야 돼요." 상담사님이 말씀을 이어갔다. "계속해서 생각의 근거를 찾아야 돼요. 저 사람이 나한테 왜 짜증을 낼까? 이런 근거가 아니라, 나 자신의 근거를요. 대대장이 나를 왜 싫어할까? 근거를 찾다 보면 이유가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이유의 유무가 아니에요. 그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 내가 지금 기분이 불쾌하구나, 내가 우울하구나, 왜일까?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생각을 해보시면, 보통 그 생각의 끝은 어떻게 되셨었나요?"
"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맞아요. 어차피 대대장이 짜증 내는 것. 내가 업무상으로 실수를 했다면 그 부분은 상급자로서 짜증을 낼 수 있는 부분이겠죠. 그 부분은 내가 감내해야 해요. 내 실수가 맞으니까.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서 인격적으로 공격을 하신다고 느끼신다면, 내 감정의 근거로 다가가는 것에 조금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대대장님을 바꾸라거나, 대대장님을 이해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냥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나 자신을 이해라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상담사님은 빙긋 웃으셨다.
우울감이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들은, 모두 많은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럴까, 왜 나한테 저런 표정을 지을까, 왜 회의시간에 내 의견에 동조해주지는 않을까, 뒤에서 내 욕을 하지는 않을까...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은 나중이 되면 "뒤에서 내 욕을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내 뒤에서 욕을 하고 다닐 거야!"라는,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명백한 사실로 둔갑해 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거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배려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를 직시하고, 본인에 대한 자가진단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기분이 불쾌한 일들, 우울한 감정이 들 때면 스스로의 자가진단을 해보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이 들까?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까? 싫어한다는 근거는 뭐지?
하나둘씩 나열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과,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나올 텐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뭐 어쩌겠는가. 세상의 몫으로 남겨두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