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치만 보던 나, 사실은 굉장히 오만한 사람일지도?
"굉장히 오만하세요, 지금"
두어 번의 상담을 한 이후, 상담사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떠나고서도, 타인에게 엄청난 눈치를 보면서 심지어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오만하다니? 오히려 소심하다거나 나약하다고 하시지, 그럼 차라리 이렇게 궁금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순순히 인정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굉장히 오만하시고, 또 굉장히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시는 거예요."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심지어 조금의 반발심까지 생기기 시작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오만하다고? 내 편한 대로만 생각한다고?
오히려 남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주면 주었지, 그러면서 내 자존감은 다 이 모양 이 꼴이 난 건데.
대체 어디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납득이 가지 않아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아마 몇 초에 불과했겠으나, 내 마음속에서는 해야 할 말을 찾느라 몇 십 분이나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기의 나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고, 특히나 그런 불안정함을 짜증과 남에 대한 험담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거나, 혹은 내가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대부분은 오해나 나의 망상)이 들었을 시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해당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험담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나에게만 뭐라고 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회의에 참석한 다른 선배 장교가 찡그린 표정을 짓거나 한숨을 쉬는 것도 모두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마음들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착실하게 나를 우울로 밀어 넣었다. 퇴근한 뒤의 방은 쓰레기장이었고, 나중엔 회의장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하는 것 대해서조차 나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하고 반응했다.
"아, 쟤는 또 나한테 왜 저 난리를 치는 거야?"
"나 때문에 한숨 쉬는 건가?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던가."
"내가 말한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네. 내가 서운하게 한 적이 있었나? 왜 저래?"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상담사님의 처방은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다 "나 때문에", 혹은 "나한테" 왜 그러냐는, 지극히 자기 파괴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에 바빴던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사고방식(차차 이야기하겠지만)을 가진 사람들은, 뇌의 피로감을 금방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피로감을 느낀 뇌는 편하고 쉬운 길을 택한다.
그건 바로 " 내 탓"이다.
저 사람이 짜증 난 것도 내 탓, 저 사람이 한숨을 쉬고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 것도 내 탓, 저렇게 행동하면서 왜 나한테만 하는 것도 내 탓.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려버리면, 머릿속에는 의문은 없어지고 강한 "(잘못된)"확신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은 점차 나 스스로가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상기 말한 것과 같이 매우 일차원적인 생각일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에 내가 관여되어 있다는 "오만한 생각"과도 같다는 것이 상담사님의 설명이었다.
"조금 세게 말씀드려서 놀라셨죠? 그래도, 중대장님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이겨내야만 하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충격요법으로 말씀드린 거예요"
그제야 상담사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 나는, 그저 얼굴을 푹 숙이고 생각에 잠기게 될 뿐이었다.
명심하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오만한 생각을 버리자. 어차피 남들도 나에게 그렇게 큰 관심 없다. 주변인 때문에 힘들다면, 나의 "오만함"을,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내 탓"이라는 사고방식의 편안함을 찾고 있는 나의 피로감인지를 들여다보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조금은 내려놓고 쉬어라. 나만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할지만 생각해라.
나 같은 개복치 멘탈러도 해냈으니, 분명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