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 화 Kiss, marry, kill
2024년 5월 26일, 인천, 장소연의 집
이틀 동안의 주말, 소연은 지친 몸과 실망감 속에 시간을 보냈다.
많이 자고, 거의 먹지 않았으며, 무심히 TV 채널만 바꿔대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불고기는 마치 그녀의 기분을 그대로 따라 하듯, 바닥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자다가 가끔 고개를 들어 애정을 구하듯 바라보았다.
소연은 그를 무심히 쓰다듬으며, 강아지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 인형 — 침에 절고 귀가 하나 떨어진 장난감 — 을 가져올 때마다 힘겹게 미소 지었다.
사실은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울기 시작하면 단순한 흐느낌이 곧 폭발적인 오열로 번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소연이 마지막으로 울었던 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그때 그녀는 일곱 살이었고, 아버지는 무려 1년 동안 중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어린 소연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음에도, 아버지가 곧 떠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떠날 거라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소연은 일주일 내내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의 실체를 완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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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소연은 눈물을 꾹 눌러 담으며 살아왔다.
그녀는 울음이란 감정을 억지로 지우고, 매일을 무표정하게 견디는 법을 배웠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장난을 치며 깔깔 웃을 때에도, 집에 돌아와 엄마가 TV를 보며 눈물을 훔칠 때에도, 소연은 끝내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너는 왜 그렇게 차갑니?”
엄마가 한 번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은 적도 있었다.
소연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차갑게 보이려 한 게 아니었다.
다만 울면, 다시는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수년이 흘렀고, 감정은 굳어졌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모두 한 겹의 벽 뒤로 숨어버렸다.
그 벽 너머에서, 아직 어린 아이처럼 움츠린 자신이 가끔은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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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방 안에 앉아 공허하게 벽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은 무겁고, 심장은 가라앉은 듯했으며, 몸은 움직이기조차 싫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일까?’
자문해 보았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려왔고, 햇살은 환하게 쏟아졌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진동했지만, 그녀는 집어 들지 않았다.
누가 연락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단지 무기력함 속에서, 그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주 작은 울림이 있었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어.’
그 목소리는 희미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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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지자, 소연은 불 꺼진 방 안에서 멍하니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지만, 손가락은 무심코 오래된 대화창을 열고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한때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했던 게임이 떠올랐다.
Kiss, marry, kill.
누군가의 이름을 들으면, 세 가지 선택 중 하나를 고르는 단순한 놀이.
그때는 웃으며 장난처럼 대답했었다.
누구는 키스, 누구는 결혼, 누구는 죽여야 한다고.
가벼운 농담 속에서 아무 의미도 두지 않았던 순간.
하지만 지금은…
그 단어들이 묘하게 무겁게 다가왔다.
키스, 결혼, 죽음.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이름.
황지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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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만약 게임처럼 선택해야 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너무도 잔인했다.
지훈과의 관계에서 그녀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키스?
결혼?
아니면… 죽음?
소연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차갑고, 무심하고, 때로는 잔인할 만큼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그녀 마음을 흔드는 존재였다.
그에게 끌리는 감정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끝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두려웠다.
소연은 무릎을 끌어안고 창밖 어둠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그 질문만이,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남아 방 안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