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약서

20 - 화 결혼 후에야 가능한 것

by 나리솔


20 - 화 결혼 후에야 가능한 것



지훈은 소연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차에서 내리게 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난처함이 가득했지만, 소연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 자신도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느꼈다.


대중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사용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시선과 손길이 따라오는 것 같은 환각에 휘둘리는 자신.

허벅지를 따라 올라오는 듯한 감각이 스칠 때마다 속이 뒤집히듯 구역질이 올라왔다.


‘최악이야. 정말…’

첫 데이트를 이렇게 망쳐버리다니, 스스로를 욕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소연은 고개를 숙여 지훈을 보지 못한 채 말했다.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는—”


“장소연.”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끊었다.

그 안에는 짜증도, 실망도 없었다. 오직 걱정과 따뜻함만이 담겨 있었다.


“괜찮아.”


소연은 씁쓸하게 웃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거짓말이에요.”


“그래, 거짓말이야.”

지훈은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네가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해.”


그의 말에 소연의 눈가가 순간 뜨겁게 젖어들었다.



---


그날 밤, 침대에 누운 소연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떴다.


황지훈:

도착했어?


소연은 한참 망설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장소연:

네. 잘 들어왔습니다.


잠시 뒤,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황지훈:

샤워했어?


소연은 뜨거워진 얼굴을 베개에 묻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장소연:

곧 하려고요.


황지훈:

너무 늦게까지 깨어 있지 마. 내일 얼굴 피곤하면 싫어.


소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단순한 문자 몇 줄인데도, 그의 말투 속에는 이상하게도 다정함이 스며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가슴 위에 올려두고 눈을 감았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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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지훈은 직접 차를 몰고 소연의 집 앞에 도착했다.

차 안으로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의 심장은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괜찮겠어?”

지훈이 운전대를 잡은 채 옆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노력해 볼게요.”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따뜻한 손길에 소연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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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 지훈의 집.


현관문을 닫자, 낯선 공간의 공기가 소연을 감쌌다.

깔끔한 거실, 은은한 조명, 그리고 그 안에서 묘하게 짙어진 긴장감.


지훈은 소연의 외투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편하게 있어. 긴장하지 말고.”


소연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은 여전히 차갑게 떨리고 있었다.


지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가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괜찮아. 오늘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게.”


그 말에, 소연의 눈가가 순간 흔들렸다.

그의 다정한 배려가 오히려 마음 깊은 곳을 아프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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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소연을 거실에서 이끌어 침실로 향했다.

방 안은 따뜻한 조명만 켜져 있었고, 고요 속에 심장 박동이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옆에 앉히고 조용히 속삭였다.

“긴장돼?”


소연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훈은 그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괜찮아. 네가 불편하면 언제든 멈출 수 있어. 난 기다릴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보다도 진심 어린 부드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 말이 오히려 그녀의 눈을 뜨겁게 만들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소연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셔츠 깃을 붙잡았다.

“대표님…”


지훈은 눈빛이 흔들리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의 숨결이 가까워지고, 입술이 겹쳐졌다.

이번에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서로의 떨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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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뜨거워지고, 두 사람은 서로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소연의 심장은 요란하게 뛰었고, 지훈의 품 안에서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순간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돌렸다.

지훈은 즉시 멈추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소연아… 아프게 했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좋아서 그래요. 그냥… 너무 낯설어서…”


지훈은 숨을 고르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의 말에, 소연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듯 아려왔다.

그녀는 그의 와이셔츠를 움켜쥔 채 속삭였다.

“…대표님.”


“응?”


“…저, 이제 말할게요. 여섯 해 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훈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소연은 떨리는 숨을 내쉬며, 드디어 오래 묻어 두었던 진실을 꺼낼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