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멈추게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설득하라

글쓰기

by 나리솔


나를 멈추게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설득하라


저의 새로운 작품이 완성되어 곧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가족의 비밀, 인간 내면의 심리적 깊이, 그리고 철학적 성찰이 교차하는 스릴 넘치는 프로즈입니다.

하지만 저는 책이 인쇄되어 서점과 플랫폼에 나오기 전에, 이곳에서 독자 여러분께 작품의 일부를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작은 조각들을 통해 미리 만나보실 수 있도록요.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로맨스’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모든 디테일, 모든 단어, 모든 시선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인간 본성을 탐구하며, 정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멈추게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설득하라


잘 알려진 한 작가는 커리어의 절정에서 갑작스럽게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그 후 5년 동안 그의 펜 끝에서 단 한 권의 신간도 나오지 않았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 작가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그의 이익을 대변한 이는 다름 아닌 수수께끼 같은 문학 에이전트였다. 한때 보헤미안 사회에서는 사실 두 사람이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대형 출판사의 외부 직원이자 신비로운 작가의 열렬한 팬인 한 여성에게 그 소문의 진실을 밝힐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작가의 집에 개인 비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녀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하나의 작은 시험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짧은 글을 쓰는 것 — 시작은 단 한 문장으로,
“나를 멈추게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설득하라.”



시작 - 프롤로그


나를 멈추게 하거나, 아니면 모두를 설득하라


이른 아침이었다. 멀리서 하늘이 붉은빛으로 막 물들기 시작하고, 이슬 맺힌 풀밭 위로 바람이 천천히 지나간다. 밤의 숲이 내뱉던 소리들은 멀어져 있고, 기분 좋은 피로가 팽팽하게 긴장했던 근육을 풀어주며 온몸을 감싼다. 그날 밤은 특별했고, 그 여운은 아직도 내 혈관 속을 타고 흐른다 —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황홀함. 오직 선택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절대적 도취감이었다.


나는 뒷문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 가파른 나무 계단을 타고 다락방 쪽으로 올라간다.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쓴다. 호기심 많은 하인들을 깨우고 싶지 않다. 새벽녘은 오로지 나와… 그녀의 시간이다.


소리 없이 문을 열자, 넓은 작업실이 펼쳐졌다. 익숙하게 오래된 물레가 윙윙거리고, 사라는 또 하나의 꽃병이나 주전자를 빚고 있다. 주형 도구들, 반제품들, 조각칼과 질감용 패드, 여러 크기의 붓, 유약이 담긴 병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물감과 먼지, 백묵의 냄새가 섞이고… 오렌지 향도 은은하다. 사라는 커피 대신 상큼한 감귤 셰이크를 마셔 활기를 얻는 편이다. 원래부터 우리 둘은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다만 불면의 이유는 서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나는 내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그녀는 창조한다. 끈적한 흙덩이에게 기묘하고 우아한 형체를 부여한다. 사라는 조각가이자 채색 예술가다. 그녀는 점토 덩어리로부터 작품을 빚어내고, 붓으로 생명을 불어넣는다. 나는 차갑고 계산적인 연쇄 살인자다 — 어떤 창조도 내겐 낯설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그녀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공통점이 있다.


방 한가운데 서서, 나는 온 존재로 그녀의 연약한 형상에 스며든다. 또다시 견딜 수 없는 갈망이 밀려오는데, 그 어떤 다른 여성도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이다. 그러나 그들은 잠깐이라도 나에게 균형을 되찾게 해 주고, 통제권을 회복하게 해 주며, 내 파멸적인 취향으로부터 사라를 지켜준다. 만약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도 그들처럼 손을 대게 된다면…


머리를 저으며 집요한 생각을 떨쳐내고, 나는 좁은 등선과 가는 허리, 뒤통수에 아무렇게나 핀 채 모아 둔 금빛 머리칼을 매혹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너한테서 연기 냄새가 나요.” — 인사말을 생략한 채 그녀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스락거린다.


몸의 구석구석에 익숙한 떨림이 지나가고, 심장은 본능처럼 움켜쥐어진다. 그녀가 내게 가진 영향력을 알기라도 한다면… 그녀가 단 한 번이라도 그 남자에게 보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본다면… 맹세하건대, 나는 멈출 수 있었을 것이다.


“선물이 있어.” —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나는 말을 건넨다.


사라는 작업을 마치지 못한 물레를 끄고, 서둘러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몸을 돌린다. 그녀의 시선은 내 얼굴을 스치듯 훑고는, 장식된 뚜껑 위에 도금된 작은 왕관이 얹힌 도자기 보석함에 멈춘다. 나는 골동품 상자 같은 것을 내밀고, 그녀의 푸른 눈에 기쁨의 불빛이 켜지는 것을 만족스레 지켜본다. 인형처럼 흠잡을 데 없는 얼굴과 그 안에 감춰진 순수함, 천진함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사라는 여전히 솔직하고 순수하며, 마치 실수로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어린아이처럼 연약하다.


“정말 놀랍다. 어디서 구해왔어?” — 사라는 정성스럽게 손끝으로 꽃 모양 장식과 굽은 다리를 쓰다듬는다.


“독일 경매에서 샀다.” — 나는 답한다.


“너 참 호사를 부리네.” — 그녀는 도자기 조형물들로 가득한 선반을 힐끔 본다. 맨 위 선반에는 희귀한 도자기들이 놓여 있고, 그 왕관이 달린 보석함은 마이센(메이센) 컬렉션의 일곱 번째가 될 것이다. 이전의 것들도 모두 내가 선물한 것들이었다.


“이 물건의 진정한 가치는 너만 알 수 있어.” — 나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진정한 가치를 아는 이는 나뿐이다. 그녀가 손에 쥔 것의 가치는 돈으로는 잴 수 없다. — “마음에 들어?”


“응, 정말 좋아.” — 마침내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하늘빛 동공 속에서 진심 어린 부끄러움과 감사의 기색을 본다. 속에서 모든 것이 떨며, 검은 불꽃이 드러난 신경 말단을 따라 달려간다. 이런 순간이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 없다. 내 고백은 사라에게 끝의 시작을 가져다줄 테니까.


“잠깐만, 내가 이 보석함 치워두고 우리 커피를 끓일게.” —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내 등에 등을 보이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빼곡한 선반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로 된 스툴에 올라가 보물함을 조심스레 내리던 사라는, 내 선물을 한정판 도자기 커피포트와 18세기 통형 병 사이에 조심스럽게 놓는다. 마지막으로 손끝으로 장식된 뚜껑을 어루만지며 열어 보려 하지 않는다. 다른 내 선물들에도 그녀는 몇 번이나 같은 시도를 해본 적이 있지만, 나는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어떤 시도도 감행할 수 없도록 아주 단단한 접착제를 사용해 두었다. 덕분에 독점적인 작품을 손상시키지 않고는 속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갑자기 천둥이 울리며 유리가 흔들리고, 그 진동이 다락방을 타고 전해진다. 그에 이어 번개가 지그재그로 하늘을 밝히고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때리며 투명한 물줄기로 흘러내린다. 격해진 자연의 힘에 홀린 듯, 나는 몇 초간 사라를 시야에서 놓치고 말았고, 그 순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깜짝 놀란 사라는 균형을 잃고 팔을 휘저으며 선반 윗부분을 붙잡는다. 우연히 건드려진 도자기 커피포트가 바닥으로 떨어져 여러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내 안에서도 무언가 깨져 나간다. 머릿속에는 악마 같은 조롱의 웃음소리가 울리고, 내 이빨은 갈린다. 그 커피포트는 그녀의 컬렉션에서 첫 번째 자리였던 물건이었다.


“제발 이건 아니야!” — 사라는 경악하며 스툴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꿇는다. 진심 어린 절망과 눈물을 머금고 그녀는 깨진 도자기 파편을 모아 더미로 쌓는다. “어떻게….” — 그녀는 중얼거리며 부서진 조각들을 맞추려 애쓴다. 내가 보기엔 한때 단단히 붙어 있던 뚜껑만이 온전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죽음에 이른 사람처럼 체념한 눈으로 바라본다. 사라가 한 조각을 뒤집자, 안쪽에 테이프로 붙여진 폴리에틸렌 포장이 보인다. 그녀가 그것을 꺼내기 전에 내가 그녀를 막고, 손에서 빼앗아야 할 시간이 있었다. 천 가지 변명을 늘어놓아 믿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일들이 바로 이 순간을 향해 나를 몰고 왔다는 깨달음이 번져온다. 어쩌면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에 지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 그 너머에는 누구에게나 끝없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는 항상 사라가 나를 멈추게 할 존재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바로 그녀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이게 뭐지?” — 당황한 그녀가 필름에서 꺼낸 메달을 떨어뜨린다.


또다시 나는 사건의 톱니바퀴를 멈출 기회를 얻었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스스로 이해할 때까지 기다린다.


사라는 체인을 당겨 바닥에 떨어진 골동품 장식을 집어 들고, 떨리는 손으로 금빛 장막을 연다. 그녀 몸의 떨림이 나에게도 튕겨 들어오지만, 나는 두려움도 혼란도 느끼지 못한다. 오직 피를 끓게 하는 음흉한 예감만이 존재한다.


사라는 나를 보지 않고 있지만, 나는 그녀 팔의 솜털이 곤두서는 걸 본다. 메달에서 금발의 한 올이 떨어져 나올 때였다. 사진을 들여다보자 그녀는 벌떡 일어난다.


“아가타….” — 눈을 감고 절규하듯 신음하며 사라가 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사진 속 얼굴을 즉시 알아본다. “아가타… 맙소사.” — 그녀의 입술이 핼쑥해진 채 중얼거린다, 마치 혼미한 상태에서처럼.


사라는 자신을 팔로 감싸며 등 돌린다. 지금 자신이 어떤 위험을 자초하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누구도 그녀만큼 터무니없이 무방비하지 않았다. 전혀 없는 자기 보존 본능은 사라를 완벽한 희생자로 만든다. 그러나 나는 거대한 실망으로 가라앉는다. 내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저항하며 싸우고, 완전히 지쳐서야 체념하고 내 앞에 굴복해 내 권력과 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녀만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고 이해해야 했다… 악마 또한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을.

“너, 그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목소리가 갈라지며 사라가 묻는다.


그녀는 여전히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해 가능한 설명을 기다리며 무서운 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정말 어리석다, 사라.


“네게 하려던 모든 것과 같은 일들이야.” — 나는 침착하고 평온한 어조로 말한다. 매일 아침 그녀의 안부를 묻고 좋은 하루를 빌던 바로 그 톤과 같다.


“아가타, 죽은 거야?”


“몇 년 전.” — 나는 한 걸음 내디뎌, 기꺼이 고백한다.


사라는 머리를 들어 그녀에게 준 도자기 컬렉션을 바라본다. 분명 각 도자기 속에 다른 얼굴이 담긴 같은 형태의 메달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추측은 정확하다.


“너도 날 죽일 거야?” —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 떨리는 몸과 가쁜 숨결이 점점 커지는 공포를 드러낸다. 나는 이런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고, 결말이 어떨지 미리 알고 있다. 머지않아 선반 위에는 또 하나의 비밀을 품은 희귀한 장식이 놓이게 될 것이다.


“그래, 사라.” — 나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한다. 한 걸음 더 내디뎌 우리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힌다. 그녀는 굳어버린 채 돌아서 나를 쳐다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나는 낙담스럽게 깨닫는다. 사라는 투쟁 없이 스스로 무너져 버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 비루한 말로 필연을 늦춰 보려는 시도는 내 짜증만을 부추긴다.


“나를 멈추라, 아니면 모든 것이 반복될 것이다….”



PART-1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내 머릿속을 스친 건 내가 열 살 때였다. 그 순간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 나는 우연히 낯선 황량한 골목길로 발을 들였고, 부서진 그네에 앉아 울고 있는 한 소녀를 보았다. 그녀는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뒤에서 다가가 가느다란 목을 손가락으로 움켜쥐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겠지.


그 생각은 나를 불시에 흥분시켰고, 사로잡았다. 두 손이 저절로 주먹을 쥔다. 나는 확신했다 — 그 가녀린 목을 힘으로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거의 확실히 믿었다. 그 범죄는 벌 받지 않고 끝날 거라고.


그 아이와 나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다. 짙은 어스름 속에서 우리를 볼 사람도 없었다. 누구도 열 살짜리 아이가 처음 발을 디딘 이 빈민가에서 그런 끔찍한 짓을 했으리라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은 절반의 집이 주인에게 버려져 폐허로 변한 곳이었으니까.


상상의 늪에 잠긴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주는 이 쉬운 죽음에 고마워할지도 모른다고. 주변을 감싼 초라한 빈곤, 낡고 무형의 옷을 걸친 채 떨고 있는 작은 몸뚱이 속에는 절망과 고통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히려 구원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그녀를 기다리는 게 뭐가 있겠는가? 하찮고 무가치한 삶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끝낼 존재로 자신을 그려 보았고, 거대한 흥분이 몰려왔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다른 어떤 감정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야만적이고 전율적인 쾌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속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은 나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날 나는 상상 속에서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낸 일을 실행하지 못했다. 다음날 저녁 다시 그곳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금발의 친구와 함께 놀고 있었다. 더 이상 울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맑고 진심 어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그것이 나를 심히 불쾌하게 했다. 내 상상 속에 만들어낸 버려지고 불쌍한 고아의 모습은 산산조각 나고 있었고, 그때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다시 그녀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는 방법을….”


“뭐 읽어?” — 침대에 털썩 앉으며 샘 보이드가 캐서린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덮더니,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본능》. 로버트 밀러.” — 그는 책 뒷면의 소개를 훑어보고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베이비, 여자는 보통 연애 소설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연쇄살인마 얘기 같은 피비린내 나는 스릴러라니.”


“둘이 상충하지는 않아. 게다가 로버트 밀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야. 그의 책은 다 읽어 닳을 정도야.” — 애인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들고 케이트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 “아쉽게도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아.”


침대에서 일어난 젊은 여자는 책장을 향해 걸어가, 좋아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나란히 그 스릴러를 꽂았다. 샘이 빼앗은 그 책은 로버트 밀러의 첫 작품으로,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후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사에서 영화화되었다. 영화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었지만, 캐서린은 책이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생각했다. 까다로운 그녀의 취향에 비추어 볼 때, 원작자가 담아낸 핵심 주제는 영화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감독은 수사와 전개 속도에 치중했지만, 주요 악역의 동기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몇 편은 봤어.” — 샘은 그녀가 모은 밀러의 작품 컬렉션에 시선을 두며 털어놓았다. — “킹(스티븐 킹) 수준은 아니지만, 나쁘진 않더라.” — 그가 인색하게 덧붙였다.


“그는 천재야.” — 캐서린은 단호히 응수했다. — “이제 집에 가야 해, 샘. 피곤하고 자고 싶어.”


“오늘 밤 같이 있을 줄 알았는데.” — 남자는 불만스럽게 찡그리며 거칠게 자란 수염을 문질렀다. — “내일은 쉬는 날이야. 하루 종일 같이 보낼 수 있잖아. 식당에 갈까? 우리 너무 오래 밖에 안 나갔잖아.”


“샘, 아침 아홉 시에 출판사에 가야 해.” — 캐서린은 피곤한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누가 일요일에 일을 해? 너 정식 직원도 아닌데 거절할 수도 있잖아.”


“정직원이 되고 싶다면 거절할 수 없어.” — 그녀가 찌푸린 얼굴로 단호히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가 아침을 만들고 네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 보이드는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자, 자기야, 이리 와. 그렇게 심각하고 까칠하게 굴지 마. 너한텐 어울리지 않아.”

캐서린은 그의 제스처를 무시한 채 굳게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녀는 압박하려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들을 주저 없이 삶에서 지워버릴 줄 알게 되었다.

샘 보이드는 오랜 세월 동안 예외였다. 그는 케이트가 가진 유일한 진정한 친구였고, 그녀는 그를 잃는 것이 두려웠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었다면, 그녀는 절대 그 불행한 파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 이후, 그녀와 샘은 그녀의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 깨어났다. ‘친구 사이의 섹스’는 거의 언제나 관계를 망치지만, 다섯 해 전의 캐서린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고, 술김에 저지른 하룻밤이 샘에게는 더 큰 의미로 번져가도록 허락하고 말았다.

“이제 가, 샘.” — 그녀는 또렷하게 발음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왜? 이번엔 또 뭐가 문제야?” — 그의 옅은 회색 눈동자에 서운함이 스쳤다.

“두 달 뒤면 결혼하는 거, 잊었어?” —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 “헬렌은 좋은 여자야. 이런 비열한 대우는 받을 자격이 없어.”

“한 시간 전까진 헬렌의 감정이나 내 결혼 따윈 네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잖아.” — 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되받아쳤다.

캐서린은 고개를 떨구며 팔뚝을 움켜쥐었다. 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헬렌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남의 약혼자와 정기적으로 잠자리를 가질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을까? 아마도 습관 때문이거나, 새로운 누군가를 찾을 의지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케이트, 나 너한테 두 번이나 청혼했어. 그런데 넌 두 번 다 거절했지. 나 이제 서른이야. 가족을 꾸리고 싶고, 아이도 원하고, 따뜻한 집도 원해. 더 이상 네가 그 어리석은 페미니스트 생각을 버릴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난 기다려 달라고 한 적 없어.” —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넌 날 어릴 때부터 알았잖아, 샘. 난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늘 숨기지 않았어.”

“네가 마음만 바꿨다고 말하면, 난 모든 걸 바꿀 수 있어.” —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샘은 그녀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러나 캐서린은 경계하듯 두 손을 뻗어 막았다.

“멈춰, 오지 마!” — 그녀가 날카롭게 외쳤고, 샘은 멈춰 섰다.

“내 친구로 남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나가.” — 조건을 내뱉은 뒤 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오직 친구로만, 샘. 다른 건 이제 끝이야.”

샘은 몇 번 눈을 깜박이며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방 안에 흩어진 옷을 주워 입은 그는, 말없이 빠르게 나가면서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친구 하나를 방금 잃은 것 같네.” — 캐서린은 씁쓸히 속삭이고, 밀러의 책을 꺼내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

“그들은 외모는 닮지 않았다. 단 하나, 머리카락 색깔만 같았다. 그러나 그 정도면 내 상상은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에 충분했다. 금발의 머리칼을 손에 감아쥐고, 나는 가죽 벨트를 그녀의 목에 바싹 조여 당겼다. 그녀는 재갈에 목이 막힌 채 숨을 헐떡이며, 발버둥 치며 나를 떨쳐내려 했으나, 나는 무릎으로 그녀의 벌거벗은 허벅지를 더 강하게 눌렀다.

‘넌 죽게 될 거야.’ — 나는 그녀의 머리 옆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이고, 긴장으로 핏줄이 불거진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코를 자극한 건 두려움의 향기,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욕망의 향기였다.

‘하지만 바로는 아니야, 자기야. 먼저 조금은 즐기고 나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