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기억하는 방법
한 시대를 기억하는 방법
인간의 기억은 놀라울 만큼 짧다. 나쁜 일조차 금세 잊히고, “각 시대마다 저마다의 숲이 자라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떤 기념일을, 꼭 둥근 숫자의 ‘주년’이 아니더라도, 그저 단순한 ‘연차’를 기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찮고 덧없어 보였지만, 분명히 있었고, 존재했고, 그 당시에는 절실하고 두려웠던 무언가를. 예를 들어, 1997년 겨울, 서울의 굶주린 12월의 여섯 번째 해를 떠올리듯이.
1997년 12월, 나는 끊임없이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난다. 수도 사람들에게는 낯선 감각이었고, 특히 서울의 어르신들에게는 전쟁과 피난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불빛은 여전히 반짝였고, 눈은 발밑에서 바삭거렸으며, 곳곳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서 있었고, 텔레비전은 아직 재치와 용기, 인간적인 떨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업적 농담과 가벼운 조롱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예능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었다. 세상은 아직 인간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가판대에는 플라스틱 제품들, 생뚱맞은 장식용 아이템들, 수입 세제, 수수께끼 같은 외국산 초콜릿 상자만 즐비했지, 정작 입에 넣을 만한 건 없었다. 배고픔은 하루 세끼가 아니라 열네 번쯤 찾아왔다. 돈이 있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았다. 달러를 가진 사람들도, 엔화를 가진 사람들도 먹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해 12월, 눈은 유난히 많이 내렸고, 길을 다 막아버려 마치 가게 따윈 더는 필요 없다는 듯했다. 그냥 살아보라고, 허공의 기운만으로.
우리 가족은 아이들을 털모자로 감싸고, 한겨울의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경기도 가평에 있는 ‘문학의 집’으로 향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하루 세 번 밥을 준다고 했다. 그게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창문에는 얼음꽃무늬가 가득했고, 청년들이 손톱으로 낙서를 새겼다. 우스꽝스럽고 민망한 단어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활기가 배고픔 속에서도 따뜻해 보였다.
가평의 ‘문학의 집’은 무척 따뜻했다. 보일러가 과하게 돌아가 습기 찬 공기가 복도를 가득 채웠고, 창가에 놓인 시들어가는 다육식물들이 덜컥거리는 온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몇몇 작가들이 슬리퍼를 끌며 복도를 돌아다녔고, 서로의 원고 계획을 나누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오직 식당에 있었다. 점심에는 설탕 반 숟가락, 저녁에는 차갑게 굳은 죽 한 그릇. 간혹 그 속에서 건포도 같은 것이 나오면, 옆자리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거두었다. 모두가 장례식처럼 조용히 앉아, 국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그곳 구석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앉아 있었다. 둘 다 창백했고, 검은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들과 얘기를 시도했지만, 대답은 짧았다. 그러다 달러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그들의 눈빛이 살아났다. "흥미롭다. 혹시 더 구할 수 있니?" 아버지가 물었다. 아이는 조심스레 "우린 장사꾼이야." 하고 속삭였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 부자는 이틀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며칠 후 우리는 소문을 들었다. 근처 ‘음악의 집’에서는 돈만 있으면 따뜻한 국을 판다고 했다. 우리는 노인들을 썰매에 태워 끌고, 눈 덮인 길을 밀어내며 그곳까지 갔다. 거기서는 싱거운 국을 돈 받고 팔았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심지어 인스턴트커피까지 나눠주었는데, 위장에 해로울 정도로 싸구려였지만, 그 따뜻함이 우리를 살렸다.
그날 저녁, 어떤 노 작곡가가 우리 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위가 얼마나 무심한지, 딸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외로운 사람들이 있는지. 우리는 웃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며칠 후,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때 내 아버지가 모스크바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에게는 작은 종이봉투가 있었다. 그는 약간의 음식과, 그리고 의회에서 나눠주던 아스피린을 두 배로 받아왔다. 그것은 부끄럽지만, 동시에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승리나 영광 같은 ‘위대한 날’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라는 걸.
그때의 기근은 지나갔다. 지금은 편의점에서도 밤새 음식을 살 수 있고, 배달 앱 하나면 따뜻한 밥이 집 앞으로 온다. 하지만 그 겨울을 떠올리면 나는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진정한 기념일은 달력에 적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배고플 때 사과 하나를 나누어준 날, 누군가가 부끄러움 속에서도 따뜻함을 건넨 순간,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기념해야 할 날이다.
굶주린 겨울은 지나갔지만, 그 속에서 나눈 작은 친절은 아직도 우리를 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