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걸음이 이끄는 곳

소음 속에서 발견한 우리 안의 고요

by 나리솔


발걸음이 이끄는 곳


우리는 끊임없이 웅웅 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어. 전화 알림음, 끝없이 밀려오는 뉴스 피드, 그리고 타인의 의견들이 만들어내는 소음까지. 가끔은 이 소음이 너무 커서 우리 자신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런 날이면 우리는 가장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 그저 걷기 위해서. 아무런 목적도, 정해진 길도, 함께할 사람도 없이 말이야.

우리의 발은 익숙한 거리를 따라 스스로 우리를 이끌고 오래된 공원으로 향해. 나무들이 부모님 어린 시절부터 그 자리를 지켰을 것 같은 그런 곳으로. 여기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게 아니라, 마치 가을 낙엽처럼 천천히 빙글빙글 춤을 추듯 말이야.

자갈길 위를 걷는 발소리가 정말 좋아. 조용하고 규칙적인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사운드트랙이지. 그 소리는 마치 벌떼처럼 어지럽게 맴돌던 우리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 주는 데 도움을 줘. 한 걸음. 숨을 내쉬고. 또 한 걸음. 또 한 번 숨을 내쉬고. 그렇게 천천히 내면의 혼란은 고요함으로 바뀌어 가.

우리는 걷고, 그저 바라봐. 특별히 뭔가를 찾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시선이 닿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거야. 저기 벤치에 앉은 노부부는 말없이 같은 곳을 보고 있어. 그들의 침묵 속에는 너무나 많은 따뜻함과 이해가 담겨 있어서,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 또 저기 작은 주황색 고양이는 햇볕에 따뜻해진 오래된 자동차 보닛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데, 그 평온함 속에서 세상의 모든 지혜가 느껴지는 듯해.

연못가에서 발걸음을 멈춰. 바람이 수면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햇살은 물 위로 수천 개의 작은 불꽃을 흩뿌려. 버드나무 잎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와 땅 위에 기묘하고 움직이는 그림자를 그리는 걸 가만히 지켜봐. 이 순간만큼은 과거에 대해 생각하지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아. 그저 우리 자신과 이 덧없는 아름다움만이 존재해. 그리고 그걸로 충분해.

이런 산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야. 오히려 현실로 돌아가는 길이지. 꾸밈없는 진짜 현실, 고요함과 불완전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저 숨 쉬는 단순한 행위가 존재하는 곳으로 말이야.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청나게 느껴졌던 문제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 안의 무언가가 달라져. 내면에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단단한 지지대가 생기는 느낌이랄까. 산책은 끝나지만, 고요한 공원 오솔길에서 찾았던 평온함은 우리 안에 남아 있어.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다시 그 평온함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아. 그저 문 밖으로 첫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되니까.



"복잡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을 때, 우리를 위한 고요한 발걸음은 가장 진실된 우리를 만나게 해주는 나침반 같아. 단순히 걷는 게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듣고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다시 연결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인 것 같아


keyword